홈 > 디렉토리 분류

1906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906.4717-20130630.010325700272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중업,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06
형태사항 크기: 32.1 X 41.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6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1906년 1월 25일에 이중업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상대의 아들이 왔다가 가는 편으로 편지는 쓰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을 구두로 전달하게 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해해 주었을 것이라 하였다. 이어서 상대와 상대 집안 및 여러 곳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친인 響山 李晩燾가 임금의 批答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才山으로 들어가셨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집안의 결혼 날이 임박한 상황을 언급하고, 세상의 형편이 좋지 않아 억지로 혼례를 치르기는 하나 별로 온당하지는 않은 일인 것 같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두 집안 모두 결혼식 절차를 줄이는 데에 힘쓰자고 하였다. 그리고 이불로 쓸 천의 염색이 끝났으면 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추신에서는 혼인에 쓸 용품들을 보내 줄 것과 장롱과 같은 물건은 사치하지 말기를 바랐다. 그리고 서울 소식, 李郞道 씨의 석방 소식 등을 물었다. 또 巖后 李晩慤의 문집 간행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전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906년 1월 25일, 起巖 李中業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06년(광무 10) 1월 25일에 起巖 李中業(1863~1921)이 혼사 등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甥君(柳淵鱗의 아들)이 돌아갈 때에 자신에게 절박한 우환이 생겨서 답장을 써서 보낼 겨를이 없었는데, 甥君이 그 상황을 구두로 전달하여 柳淵鱗이 이해해 주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柳淵鱗 및 누이(眞城李氏)와 생질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가 어버이의 명으로 억지로 平里로 가느라 말릴 수는 없었으나 그날이 길을 떠나기에 좋지 못한 날이어서 걱정을 했다고 하면서, 그가 언제 집으로 돌아갔는지 물었다. 그 외에 다른 친족들의 안부도 물었다. 伯振(所安 柳東麟) 형이 좋은 묏자리를 잡아서 葬事를 치렀는지 물었다. 또한 水谷의 근황도 평안한지 물었다.
李中業은 부친인 響山 李晩燾가 임금의 批答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縣次에서 席藁하려고 했다가 결론이 나지 않을 우려가 있을 듯하였기 때문에 才山으로 들어가셨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婚事가 임박한 상황을 언급하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成禮하기는 하지만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고 上疏하여 待罪하고 있는 와중에 태연스레 혼례를 치르는 것이 끝내 온당치 않은 것 같다고도 하였다. 양쪽 집안에서 번잡한 결혼식의 절차를 줄이는 데에 힘쓰는 것이 일의 체모에 합당할 듯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衾材의 염색이 끝났으면 그것을 이편에 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추신에서는 먼저 머리 장신구와 족두리, 唐介를 이편에 함께 부쳐 보내달라고 청하는 한편 籠奩 등의 물건은 과대하게 해서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서울 소식이 막혔다고 하면서, 柳淵鱗 쪽에서는 혹 자신에게 알려줄 만한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李郞道 씨가 大邱에 체포되어 있었는데, 근래 석방 소식을 들었는지도 물었다. 德允(石南 柳鳳熙)이 12월 그믐에 풀려나서 1월 20일 쯤에는 내려올 것이라 여겼는데 현재 소식이 없다고 하였다. 『巖後稿』(巖后 李晩慤의 문집)를 활자로 인쇄하려는 柳淵鱗 측의 논의에 대해 매우 좋다고 평가하였다. 草本 가운데 2책을 제외한 나머지 14책을 조카 가 돌아오면 그로 하여금 받들고 가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李中業柳淵鱗에 대하여 스스로를 婦弟라고 칭하였는데, 그의 누이인 眞城 李氏가 바로 柳淵鱗과 혼인하였다. 柳淵鱗李中業의 부친인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6년 이중업(李中業) 서간(書簡)

甥君歸時。有剝床之患。無暇修謝。必
得其口達。而賜原也。其後日富。餘寒甚峭。
未審
體事莫有損諐。妹甥俱安吉。
以庭命。强向平里。雖不得遏止。而其日其
政不佳。迄庸慮念。未知那日反侍也。宅
窟遭艱。係是驚怛。其外堂廡僉候更何
如。伯振哀兄。已卜得吉兆營窆耶。水谷
候。亦在支旺否。幷切溯仰之至。婦弟。老親未承
批之故。始欲席藁縣次。似有終沒究竟之慮。
故入才山楸下。安仲連承均。狀亦免。而季母
再朞隔夜。悲慟情私。去益無謂。吉幹所
卜之日。已斗迫。凡百雖曰權宜。所不可無之袍衾。
亦似未及。它可推矣。奈何奈何。時象之故。强可
成禮。而國有大變。陳章待罪之中。晏然
行吉禮。終覺未安。已於水谷書略盡之。彼
此凡百。一以減節爲務。似合體面。已諒之
否。衾材若已染色。此便送來。幸甚。餘忙
不宣式。
丙午 元月 卄五日。婦弟 中業 拜。

首飾及簇頭里唐紒。幷付此便以送。如何。
籠奩等物。不必張大送來。此近保林之厄。尙種種未已。曾備者。
不能無戒故耳。金夫始來屯於丹遠。編探止下江濱。方上
松坡地境。兩處採之。而聲言開春後將下來。此必然之事。
何可以目前得免爲幸耶。西聞頓阻。貴中或有可聞
者耶。李郞道氏見滯於
大邱。近或見放云耶。
德允臘晦放出。謂以
念間下來。姑未更聞
耳。巖後稿貴中
活印之論。甚好甚好。但恐
時事。果能饒寬做此
事耶。元塘專通已
久。而姪出外不在云。
草本合十六冊。二冊主
人不在之故。未得覓來。
見存者十四冊見來。將
之歸。使之具秩奉去矣。
然此稿長在外。本村
人。尙未見其面目如何
耳。武廡叔姪中。
必從近出去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