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4월 26일, 起巖 李中業이 간행할 문집의 교정 초고본을 보내달라고 청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에게 보낸 편지
1906년(광무 10) 4월 26일에 起巖 李中業(1863~1921)이 간행할 문집의 교정 초고본을 보내달라고 청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오랫동안 객지에 있으면서 집안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늘 임산부에 대해 걱정하였는데 소식을 들을 길이 없다가, 돌아와 柳淵鱗의 편지를 받고 또 毅可 형이 전해준 내용을 통해서 한 사람은 이미 아들을 얻었고 한 사람은 손자를 얻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에 심부름꾼이 기한에 맞게 도착하여 柳淵鱗의 편지를 받고서, 柳淵鱗이 평안하며 고모와 며느리가 회복되었으며 조카들이 모두 건강함을 알게 되어 매우 마음이 놓였다고 하였다. 아들을 얻었다고 운운한 대목은 柳淵鱗이 이 무렵에 막내아들인 柳顥植을 낳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李中業은 한 달 남짓 객지에 붙잡혀 있다가 일이 이미 반이 지났기 때문에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귀가한 지 며칠 되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학질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라고 하였고, 季父의 첩이 낳은 자식이 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또한 아이들이 모두 疥瘡에 걸렸다가 지금 비록 나아가고 있으나 松이는 식욕이 떨어져 기운이 없어서 쓰러질 형편이라고 하였다. 이제 막 약을 쓰려고 하는데 갖가지 근심을 이루다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巖后 李晩慤의 문집을 이미 교감하여 正本을 완성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북쪽으로 가는 데 방해를 받는 일이 있어서 끝내 조금의 성의도 보이지 못하였으니, 매우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하였다. 베끼는 일을 그간에 이미 끝냈을 것이라고 하면서, 장차 언제쯤 인쇄하기 시작하는지 물었다. 부친(李晩燾)께서 한 번 열람하고 싶어 하시지만 山門을 한 발짝도 나가실 수 없으니, 이러한 뜻을 水谷에 알려서 조만간에 들여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또한 狀本 중에서 添改할 곳을 하나하나 기록해 보내달라고도 하였다. 끝으로 義兵이라 칭하는 자들이 곳곳에서 벌 떼처럼 일어나고 있는데 어떤 이는 강을 따라 내려오고 어떤 이는 동쪽에서 고개를 넘어 와서 장차 오늘 쯤 이곳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水谷에 사람을 보내어 사위를 오게 해달라고 청해야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겨를이 없다고 하면서, 속히 보내달라는 뜻을 그쪽에 알려 달라고 청하였다. 水村에 편지를 따로 써서 보내야 하지만 의병이 강을 건너는 상황에서 자신이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이를 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표하였다.
李中業은 柳淵鱗에 대하여 스스로를 弟라고 칭하였는데, 그의 누이인 眞城 李氏가 바로 柳淵鱗과 혼인하였다. 柳淵鱗은 李中業의 부친인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