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12월 19일, 이중업이 이사 및 于禮와 관련하여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906년(광무 10) 12월 19일에 起巖 李中業(1863~1921)이 이사 및 于禮와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골짜기에 계시는 부친의 안부를 연이어 듣고 있으며 숙부께서도 큰 탈 없이 지내신다고 하였다. 자신은 한 달 동안 떠돌다가 오늘 비로소 처소에 들어왔다고 하였고, 전염병 기운이 가까운 곳까지 들어왔으나 禮法대로 제사를 치렀다고 하였다. 자신의 집안이 이사할 것이라는 말은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어 기회를 노리는 무리들이 날마다 떼를 지어 마을에 횡행하고 있는 등 자신의 집안에서 겪고 있는 큰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고, 수삼 곳에 살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는, 자신의 누이인 眞城李氏의 于歸禮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중업은 누이의 종기가 이미 나은 후이니 마땅히 于禮를 행해야 하는데, 창황한 상황을 만나서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 간편함을 따르는 것이 본디 피차의 본분이라고 하면서, 세속에서 숭상하는 것을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였다. 그러면서도 족두리와 轎子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곳에는 하나는 없고 하나는 낡았는데 류연린 집에는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족두리는 문에 들어온 뒤에 쓰는 것이니 보내 올 필요가 없고 轎子는 전날에 들여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어른께 아뢰어 의논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와 같은 나쁜 상황에서 이리저리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좋은 풍경이 아닌데다 얻는다고 기필할 수도 없다고 하면서, 부디 유념해 달라고 하였다.
이중업과 류연린은 서로 처남매부지간이니, 이중업의 누이인 眞城李氏가 류연린과 혼인하였다. 곧 류연린은 이중업의 부친인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류연린의 자는 見卿, 호는 奮山이고, 金興洛의 문인이다. 항일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저서로는 『奮山遺稿』가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