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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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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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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연린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900
형태사항 크기: 21.8 X 47.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일월 재령이씨 인려후손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00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1900년 1월 14일, 柳淵鱗이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감동을 전하고 병자를 위한 약제를 추천하기 위해 벗과 벗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兄과 仲氏와 叔兄과 함께 어울렸던 즐거움을 회상하였다. 누나 母女의 천식이 어떠한지 물었고 而玉에게는 十全蔘朮을 복용하도록 할 것을 제안하였다. 자신은 나다녔다가 한기를 입어 설사병이 재발한 상황과 從兄 및 아이들이 위태한 중에 있는 상황을 전하였다. 堂奴를 이튿날 바로 돌려보낸 것이 미안하며 鬣子는 복통이 있어 유숙시켜 보냈다고 하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900년 1월 14일에 柳淵鱗이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감동을 전하고 병자를 위한 약제를 추천하기 위해 벗과 벗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
1900년 1월 14일에 柳淵鱗이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감동을 전하고 병자를 위한 약제를 추천하기 위해 벗과 벗의 형제에게 보낸 편지이다.
병들어 누워 있으면서 나란히 읊조리는 일은 서로 기약한 부절 같은 일이지만 그러나 번뇌를 잊고 쳐다보면서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은 대개 모인 즐거움이 은연중에 그 가운데 존재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별할 때의 남는 정회가 애련한 병통으로 여전하다고 하면서 밤중에 헤어져 험지를 넘어 갔는데 피로가 남아 몸이 불편한지 물었다. 兄이 퇴고하고 仲氏가 最重을 자처하고 叔兄이 괴로움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가 건강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姊氏 母女의 천식이 어떠한지 물었고 而玉이 복용한 것은 전부 敗丹劑라고 하면서 十全蔘朮이 반드시 애초에 병이 없었던 사람에게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어제 종을 데리고 말 타고 다녔다가 아침에 남은 한기를 입었고 묵은 설사병이 다시 발생하여 몹시 곤경에 빠져 고민스러우며 집안의 老少가 지난날 貴中에서 본 바와 같이 모두 괴로워한다고 하였다. 從兄 및 아이들도 지금 위태한 중에 있어 애가 탄다고 하였다. 堂奴는 당신의 流風을 받은 사람인데 그 이튿날 바로 돌아가서 인정에 가깝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하며 鬣子는 약간 복통이 있어 유숙시켜 보냈다고 하였다. 반드시 어제 돌아가지 않았으면 땔감이 적었을 지도 모른다고 하며 용서를 구하였다.
발급인 柳淵鱗(1868~1936)은 본이 全州이고 자가 見卿이며 호는 奮山이다. 부는 柳基鎬이며 생부는 柳膺鎬이고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유고가 있다. 편지 내용 중의 而玉은 李暾浩(1868~1942)의 字로 본이 載寧이고 호가 雲西이며 英陽에 살았다. 1919년 파리장서에 서명을 하였고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 받았다.
김정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0년 류연린(柳淵鱗) 서간(書簡)

兄主前僉棣座下。

省式。病枕聯吟。若相期之符
者。然所以忘其腦鼓瞻樂者。
蓋聚合之樂。隱然存乎其中
也。第別時去留之情。俱有共病
同憐。則此將何術以能挽祛此
耿耿也。伏請二夜謝
堂上越險餘憊。必多勞撼之致。能
萬重。
兄主强作能敲。
仲氏自居最重。
叔兄不敢稱苦者。俱得披覩快
靑。姊氏母女喘喘。幷何如。而玉
所服。並敗丹劑可勝。十全蔘朮。必
能勝於初無病者。何可更問耶。
呵呵。弟。昨日從馬行色。朝得餘
寒。宿祟河魚。更發困劇。悶事
悶事。且家間老少苦劇。大抵如向
日。貴中所見。此何運氣也。懍怕
之外。還覺可笑。從
兄及兒們。方在危
劇中。焦慮焦慮。堂奴
流風餘其翼直歸。
似嫌不近情。且鬣
子微有腹痛。故留
宿以送。想必昨日不
歸。有柴少訝惑。或
可恕亮否。餘因今
歸。忙不備上。
照亮。
庚子 元月 十四日。弟服人 柳淵鱗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