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5월 27일, 류연갑이 집안의 근황을 묻고 류기호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1891년(고종 28) 5월 27일에 瓠石 柳淵甲(1850~1920)이 집안의 근황을 묻고 柳基鎬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떠나온 뒤에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항상 간절하였다고 하면서, 객지에서 느끼는 감회를 얘기하였다. 이어 삼복더위가 점점 가까워 오는 시절에 喪中에 있는 류연린이 잘 버티어 내고 있는지, 어린아이는 잘 크고 있으면서 걸음마가 더 나아지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임산부가 해산한 지 이미 몇 달이 되었는데 아들을 낳고 산후 후유증은 없는지도 물었다. 특히 자신의 집안의 근황이 어떠한지 물었다. 그러면서 류연갑 자신이 집안에 있을 때처럼 류연린이 신경을 잘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류연갑 자신은 석 달 동안 객지에서 고생을 하다가 이제 마음이 쾌활해진 상황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처한 환경으로 인하여 옛일 생각이 나서 안정을 취할 수 없다고 하였다. 돌아가신 伯父께서 귀여워 해 주셨는데 아이가 과거에 합격하였으니 돌아가신 백부께서 아신다면 매우 기뻐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과거에 합격한 아이란 류연갑의 아들인 慕庵 柳東杰을 가리키는데, 류동걸은 이해에 生員試에 입격한 바 있다. 요컨대, 이 편지는 과거를 치르는 아이와 함께 상경한 류연갑이 아들이 합격하여 기쁜 반면에 아들을 귀여워해 주시던 큰아버지 류기호가 생각나서 서글프다는 내용이 담겼다.
류연갑과 류연린은 서로 從班間이다. 모두 伯窩 柳致孝의 손자로서 류연린은 石隱 류기호의 아들이고 류연갑은 류기호의 동생인 柳在鎬의 아들이다. 류연갑이 연상이므로 류연린에게 류연갑은 사촌형님이 된다. 원래는 柳建鎬의 둘째아들인데, 류재호의 후사로 정해졌다. 피봉의 見卿은 류연린의 字이며, 廬史는 류연린이 喪中에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景禹는 발신자 류연갑의 字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