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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86.4717-20130630.01032570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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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도화,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6
형태사항 크기: 22.5 X 30.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6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1886년 1월 10일, 김도화가 면회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옥중에 갇혀계신데 몸 건강히 계시는지 안부를 묻고 며칠 사이에 당신을 석방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니 조금 더 힘을 내셔서 무사히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고 당부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상을 당해 괴로운 상황이며 당신을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江路가 끊기고 叔兒가 병중에 있어서 찾아 뵙지 못했다고 하면서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86년 1월 10일, 김도화가 면회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86년(고종 23) 1월 10일에 拓庵 金道和(1825~1912)가 면회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옥중에 갇혀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화란이 닥치는 것은 옛날의 훌륭한 군자라도 면하기 어려웠던 것이라고 하였는데 당신께서 싸늘한 감옥에서 늙은 몸으로 포승줄에 묶여 수감되어 있는 것은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하였다.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한다.[素患行患]"라는 말을 옛 성인이 비록 하셨지만, 사람의 마음이 쇠나 돌처럼 감정이 없지 않은데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도 하였다. 이어서 추위가 풀리지 않은 이때에 수감 중인 柳基鎬가 건승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한 당신의 석방이 며칠 사이에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귀양을 가 있는 상태에서도 찾아오는 이를 거절하지 않았던 朱子의 말을 인용하며 조금 더 힘을 내셔서 무사히 돌아올 날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하고 있다. 자신은 喪을 당하였는데 목숨이 질겨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갈수록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난해 섣달의 旬望께부터 자신이 직접 찾아뵈려고 여러 차례 생각하였으나 전에는 江路가 끊어졌기 때문에 시일을 끌다가 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또 叔兒가 병중에 있기 때문에 찾아뵈지 못하였으니 상대에 대한 자신의 정성이 가벼운 꼴이 되었다고 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였다.
발급인 金道和은 조선 말기의 학자로 자는 達民, 호는 拓菴이고 본관은 義城, 본적은 安東 이다. 金若洙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晉陽鄭氏이다. 柳致明의 문인으로 1893년 遺逸로 천거되어 義禁府 都事에 임명되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안동의 유림대표로 擧義通文을 발표하였고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그뒤 노환으로 은거하면서도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를 맞아 항의문과 규탄문을 통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저서로는 『척암문집』이 있다. 수취인 柳基鎬는 자는 鞏甫이고, 호는 石隱이고 부친은 柳致孝이다. 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어 인근 유림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는 『客日隨錄』와 『石隱集』이 있다.
이 편지는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반발한 사림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柳基鎬1864년에 臨川書院의 사액을 청하는 일로 상소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데 이어, 1870년 겨울에 임천서원 청액운동을 전개하다가 강원도 金化에 유배되었고 이후 평안북도 宣川으로 移配되었다. 또한 1881년 영남만인소가 일어나고 李載先의 사건이 일어나자 嶺儒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수배되었고, 1882년에는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885년에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조선 후기 유림의 사상과 활동』, 권오영, 돌베개, 2003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6년 김도화(金道和) 서간(書簡)

稽顙白。禍患之來。昔之君子。或有不免。而氷雪圜扉。白首
縲絏。實非可堪之事。素患行患。前聖雖云。而苟非鐵肝
石腸。何以辦此。卽日寒事未解。伏惟
縲中體事。益自衛嗇否。轉聞究竟。當在數日間云。雖
未知遠邇風土之何居。而朱夫子曰。若合過嶺。亦是前定。
萬法隨遇加勉。以竢好還之期。如何如何。罪人。頑不死滅。忍
見新歲日月。悠悠莫逮之慟。去益靡際。奈何。自前臘旬
望間。屢擬趨晉。以效同室與共之誼。而前以江路塞斷。因
循未果。今又叔兒。以無何之病。方在澒洞。裏許區區相與
之忱。至此而掃如矣。尙何以自文哉。悚恧悚恧。餘。惟伏幾
體韻保重。以副朋友之望。荒迷不次。謹疏。伏

尊照。
丙戌元月十日。損弟罪人。金道和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