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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류지호(柳止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85.4717-20130630.01032570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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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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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지호,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5
형태사항 크기: 22.9 X 44.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5년 류지호(柳止鎬) 서간(書簡)
1885년 9월 28일, 류지호가 虎巖을 개축하는 일과 관련하여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당신이 계신 쪽이 풍년이 들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虎巖을 개축과 관련된 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虎巖을 개축하는 일은 집안의 어르신들로부터 제기되었는데 그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모르겠으니 답답하다고 하였다. 또 浦底에서도 논란이 발생하였고 당신께서도 말씀을 바꾸셔서 혼란이 야기되었으니 한 번 만나 숨김없이 다 털어놓자고 하였다. 끝으로 약재인 附桂는 아들을 통해 부쳤으며 弟의 안부를 묻고 편지를 마치고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885년 9월 28일, 류지호가 虎巖을 개축하는 일과 관련하여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85년(고종 22) 9월 28일에 洗山 柳止鎬(1825~1904)가 虎巖을 개축하는 일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柳永鎬 양 군이 간 후에 소식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는데 상대방과 가족 분들은 모두 편안하신지 안부를 묻고 이곳은 흉년으로 물가가 높은데 柳基鎬 측은 풍년이라는 얘기를 듣고 다행하다고 하였다.
본론에서는, 虎巖을 개축과 관련된 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虎巖을 改築하자는 논의가 이미 집안의 老成으로부터 제기되었으니 자신도 하나의 權道라고 여겼지만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아직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하였다. 또 柳永鎬 등이 멀리 떠난 뒤에 浦底의 사람이 와서 서울에 소식을 전하는데 都正公은 이전의 태도를 굳게 고수하였으나 交河는 논의를 곧장 바꾸니 浦底의 사람이 의기양양해서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혹 다시 시끄러운 단서가 생기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이미 宗中의 전체 통문이 있었으니, 改築하는 절차에 대해 염려할 것이 없다’는 都正公의 주장을 언급하고, 아울러 또한 암행어사에게 편지를 보내 문제를 해결 했으니 그가 비록 고개를 넘지 않았으나 반드시 다시 사단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당신께서 뒤늦게 허물을 따지고자 하여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추궁하고 한번 만나 숨김없이 다 털어놓자고 하였다. 끝으로 당신께서 부탁하신 附桂는 아들을 통해 부쳤으며 弟의 안부를 묻고 편지를 마치고 있다.
발급인 柳止鎬는 자는 元佐, 호는 洗山이고 본적은 安東이다. 부친은 定齋 柳致明이다. 司憲府 監察宗廟署令 등을 지냈으며 新昌杆城蓮川長耆 縣監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安東에서 일으킨 의병대에 참여하였으며 단발령에 반대하여 안동에서 의병이 일으키는데 관여하였다. 문집으로 『洗山集』이 전한다. 수취인 柳基鎬는 자는 鞏甫이고, 호는 石隱이고 부친은 柳致孝이다. 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어 인근 유림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는 『客日隨錄』와 『石隱集』이 있다.
이 편지는 전주류씨 가문 내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한 분쟁을 적고 있다. 편지에 등장하는 虎巖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는 전주류씨 가문의 虎巖齋舍를 의미한다. 이곳은 延安 府使를 지낸 柳克恕(?~1388)의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록 이 편지의 내용만으로 虎巖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상의 숭배와 관련하여 가문 내에서도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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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85년 류지호(柳止鎬) 서간(書簡)

兩君歸後。無以嗣信。尋常鬱悒而已。冬
序屆矣。伏未審
調體度無損。古紙繙閱。日有家計。家內大小節
皆安頓穩遣否。秋型此地。以場凶市輕頗甚。吾近
或無是患。聞其處大登。爲之佳幸。處巖還築之議。
非弟之所料。而旣自家中老成發論。則弟亦謂變中。
一道。而尙未聞如何究結。尤所燥鬱處。弟輩遠去後。
浦底人來括中。都正公則牢守前執。交河則卽
改議論。聞人揚揚下去云。或無更鬧之端耶。都
正公言曰。無論如何若何。旣有宗中全通。則不必憂慮
於改築之節。且見繡衣。委書于弟者。則於其心。亦有不
能釋然。以吾之料。繡衣雖不踰嶺。必不更作事端。
周議處之焉。大抵當初事。今不必追提。而弟之信
伏于兄者。此等變處尤多。前日橫厄。人所恐劫者。而
兄乃如踏平地。今日變恠。蠢愚之所猛心者。而老少幾
人。風靡一號令之間。貽此千古莫逮之憾。此吾所以無憾
於家內餘人。而欲追咎於兄者也。曾以兄見事甚明。有不
可奪之措。而胡乃作浦底
人之事乎。羞憤欲死之心。
不得不一番吐盡。未知以爲
如何也。向日弟。以附桂
轉托費。取四兩重矣。今聞
兒言。則前所費往者。爲兄
主之藥。今日轉托。非兄主
所用云。始信婦女之藥。附
桂不當。弟之說。不免荒唐
姑不敢直呈。付之兒子。果
是兄藥。當取去以用。不
然欲賜執君故耳。
弟歸後。或安心革
去舊習。以弟所見一出。則
其習尤倍初出再出之
間。其層節若何。若三
出。則必有莫可追之慮。深
量深量。而不爲後悔之地焉。時象愈無佳
今待他邑事定頓。當商確去就計
耳。餘。不備白
乙酉九月卄八日。從弟止鎬。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