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9월 28일, 류지호가 虎巖을 개축하는 일과 관련하여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85년(고종 22) 9월 28일에 洗山 柳止鎬(1825~1904)가 虎巖을 개축하는 일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柳永鎬와 直 양 군이 간 후에 소식이 없어서 마음이 답답했는데 상대방과 가족 분들은 모두 편안하신지 안부를 묻고 이곳은 흉년으로 물가가 높은데 柳基鎬 측은 풍년이라는 얘기를 듣고 다행하다고 하였다.
본론에서는, 虎巖을 개축과 관련된 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虎巖을 改築하자는 논의가 이미 집안의 老成으로부터 제기되었으니 자신도 하나의 權道라고 여겼지만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는 아직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하였다. 또 柳永鎬 등이 멀리 떠난 뒤에 浦底의 사람이 와서 서울에 소식을 전하는데 都正公은 이전의 태도를 굳게 고수하였으나 交河는 논의를 곧장 바꾸니 浦底의 사람이 의기양양해서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혹 다시 시끄러운 단서가 생기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이미 宗中의 전체 통문이 있었으니, 改築하는 절차에 대해 염려할 것이 없다’는 都正公의 주장을 언급하고, 아울러 또한 암행어사에게 편지를 보내 문제를 해결 했으니 그가 비록 고개를 넘지 않았으나 반드시 다시 사단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당신께서 뒤늦게 허물을 따지고자 하여 혼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추궁하고 한번 만나 숨김없이 다 털어놓자고 하였다. 끝으로 당신께서 부탁하신 附桂는 아들을 통해 부쳤으며 象弟의 안부를 묻고 편지를 마치고 있다.
발급인 柳止鎬는 자는 元佐, 호는 洗山이고 본적은 安東이다. 부친은 定齋 柳致明이다. 司憲府 監察․ 宗廟署令 등을 지냈으며 新昌․ 杆城․ 蓮川․ 長耆 縣監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생하자 安東에서 일으킨 의병대에 참여하였으며 단발령에 반대하여 안동에서 의병이 일으키는데 관여하였다. 문집으로 『洗山集』이 전한다. 수취인 柳基鎬는 자는 鞏甫이고, 호는 石隱이고 부친은 柳致孝이다. 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어 인근 유림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는 『客日隨錄』와 『石隱集』이 있다.
이 편지는 전주류씨 가문 내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발생한 분쟁을 적고 있다. 편지에 등장하는 虎巖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는 전주류씨 가문의 虎巖齋舍를 의미한다. 이곳은 延安 府使를 지낸 柳克恕(?~1388)의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록 이 편지의 내용만으로 虎巖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조상의 숭배와 관련하여 가문 내에서도 상당히 치열하게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