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월 16일, 이돈우가 先亭에서의 모임과 관련하여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84년(고종 21) 1월 16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先亭에서의 모임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신년에 들어 받은 2통의 편지는 모두 먼 곳에서 전해진 陽春의 소식이라고 하면서, 두 곳이 올 한 해 동안 만복할 것임을 이에서 점칠 수 있겠다며 반가운 마음을 표하였다. 이어 服中에 있는 류기호 및 同堂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아들을 더 낳은 류기호의 조카에 대해서 축하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이돈우는 우연히 얻은 질병의 병세가 일정하지 않다고 하면서, 때때로 거울을 보면 옛날 자신의 면목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하였다. 병세가 심상치 않으니 결말이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杆城郡守로 재직하고 있는 洗山 柳止鎬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의 병이 악화될 조짐이 있음을 살피고 걱정스러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근의 龍角에 거주하는 사람이 歲前에 서울에서 關東으로 갔었는데, 류지호가 郡政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있으며 또 그 사람을 매우 후하게 대접해 주었음을 전해 주었다고 하였다. 이돈우는 류지호가 그 사람을 잘 대접해 준 데 대해 눈물겹게 고맙다고도 하였다.
끝으로 先亭(晩愚亭을 가리키는 듯함)에서의 연례 모임 날짜가 임박하였는데 彛執(石下 柳建鎬)의 편지를 보고 자신도 함께 가서 모임에 참석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나 돌아가신 어머니의 忌日과 겹칠 것 같다고 하였다. 모임 장소를 촌의 新亭으로 옮겨서 鳥嶺을 따라 바로 이곳으로 향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다. 모임과 관련하여 치솟고 있는 物價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발급인 이돈우는 본관이 韓山으로, 자는 始能, 호는 肯庵이다. 아버지는 秀應이고, 大山 李象靖의 高孫이다. 그런데 壺谷 柳範休의 아들인 柳魯文이 이상정의 아들인 李埦(이돈우의 증조부)의 막냇사위였기 때문에, 이돈우에게 류노문(곧 류기호의 伯祖)은 大姑母夫가 된다. 이돈우와 류기호는 이런 戚分이 있는 데다, 모두 定齋 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서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 이돈우는 1850년 문과에 급제하여 承文院正字 ‧ 典籍 ‧ 校理 ‧ 刑曹參議 ‧ 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肯庵集』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