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5월 26일, 이만도가 근황을 전하고 채무 변제와 관련하여 사돈댁에 보낸 편지
1883년(고종 20) 5월 26일에 響山 李晩燾(1842∼1910)가 근황을 전하고 채무 변제와 관련하여 사돈댁에 보낸 편지이다.
먼저, 仙境에서의 좋은 모임은 쉽게 파하고 돌아오기에 아까웠는데 정중한 답장을 가까운 시일 내에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상대가 돌아온 뒤에 기력이 손상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山水와 道院의 사이에서 경치의 도움을 받아 흥취가 발한 바가 있었던 것이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또한 연세 높은 어르신의 병환은 더위에 조섭을 적절하게 하지 못한 때문인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안부를 여쭙지 못하였던 것이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이만도는 자신의 어버이께서 편찮으신 것이 아이들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고 있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은 것 같다고 하였는데, 연관 관계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이어 새로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 이곳으로 오는 것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동요된 것이고 屛鄕에서 인사하는 것도 빨리 마칠 수 없을 듯하다고 하였는데, 역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쉽지 않다. 또한 瓢川(瓢谷과 川前을 가리키는 듯함)에는 본디 금방 부자가 되는 법이 있으니 옛날에는 그냥 넘어갔던 것에 대해 지금은 이자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折券(債券을 포기하고 돈을 다시 요구하지 않음)을 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난감함을 표하였다. 표곡과 천전의 사람으로부터 향산이 채무 변제를 독촉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끝으로, 나머지 사연은 別幅에 기재해 두었다고 하였다.
殉國烈士 이만도와 石隱 柳基鎬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이만도의 딸인 眞城李氏가 류기호의 장남인 奮山 柳淵鱗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