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2월 6일에 李鉉謨가 盛德을 사모하는 마음과 자신의 학업을 개탄하는 심정을 알리기 위해 族祖 李秀榮에게 보낸 편지
1882년 2월 6일에 李鉉謨가 盛德을 사모하는 마음과 자신의 학업을 개탄하는 심정을 알리기 위해 족조 李秀榮에게 보낸 편지이다.
私心으로 盛德을 景慕함이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하며 때때로 모시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작년 봄에 竹裡館에서 삼사일 계시면서 강의를 들어 집안의 옛 법도를 알고 경각했었다고 하였다. 冷翁集을 교감하는 일에 정력을 쏟고 계시는데 편차가 이미 완성되었는지 건강은 어떠한지 물었다. 손자가 책을 읽는 것이 어떠한지 궁금해 하며 장래를 기대하였다. 손자가 일전에 宗堂에 들르는 줄 알았었는데 간 뒤에 왔다갔다는 말을 들어서 만나보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자신은 모친을 모시고 예전처럼 지내고 있는데, 공부를 하다 말다 하여 끝내 어떻게 길을 잡아갈 지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며 시간을 허비한 것이 이미 30년이 되었으니 끝내 小人이 될 것이라고 자책하였다. 추록으로 영감 할아버지 상사를 애통해 하였다.
발급인인 李鉉謨(1853~1927)는 본이 載寧이며 자가 景贊, 호는 仁廬 또는 亦人齋이며, 李壽五의 제 3자이다. 寧海 仁良里에서 태어나 1896년에 英陽 石保面 做士洞으로 이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가 전한다. 수취인인 李秀榮(1809~1892)은 본이 載寧이며 자가 士實, 호는 左海이며 英陽에 거주하였다. 嘉善大夫同知敦寧府事를 지냈다. 만년에 석보면 화매리에 梅溪亭을 지어 여생을 보냈다. 유고 4권과 부록 2권이 전한다.
본 이현모의 편지는 『仁廬處士遺稿』권2에 「上族祖左海翁」의 제목으로 실려있다. 내용 중 “冷翁集”은 李徽逸의 증손인 冷泉 李猷遠(1695~1773)의 문집을 가리킨다. 이유원은 자가 宏甫이며 청송에 거주하였다.
仁廬處士遺稿, 李鉉謨, 2003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