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2월 4일에 柳基鎬가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寧海 仁良의 벗에게 보낸 편지
1882년 2월 4일에 柳基鎬가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寧海 仁良의 벗에게 보낸 편지이다.
朝夕으로 같이 있을 때는 특별한 일임을 몰랐는데 송별함에 미쳐서 비로소 쉽게 얻을 수 있는 만남이 아닌 줄 알았다고 하였다. 문안 편지를 받아 위로됨이 많다고 하며 헤어질 때의 서운함은 절로 만나기 이전이 아니어서 떨쳐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從氏 甥君이 왔을 때 堂闈께서 새해에 더욱 건강하고 당신의 기거가 평안한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다행스러워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일로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을듯하다고 하며 그냥 시간을 너무 보내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일이 혹 그 應接하는데 따른 방해를 면하지는 못했을 것인데 의지는 중지됨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더욱 진보하기를 바라였다. 자신은 쇠약한 몸에 또 나이를 더해 늙음을 알만하다고 하면서 또 게을러져 스스로를 단속함이 없어 가련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고 하였다. 上村의 祥事는 이미 삼년상이 끝났지만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흐르는 데 따른 허전한 아픔을 실로 마음 가지기가 어렵고 식구는 다행히 병을 면하였지만 보는 것마다 슬퍼 살이 빠질 것을 염려하였다. 從氏가 기필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려고 하여 그의 性情을 헤아리건대 불어난 강 건너에서 감정을 조절하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어서 모인 객이 힘을 합하여 만류하였다가 지금 비로소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大忌를 攝行함은 저 사람의 情禮에 크게 미안하나 상황이 장애가 된 것이니 만번 위로하여도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독실히 공부하여 붕우의 희망에 부응하기를 바라였다.
발급인 柳基鎬(1823~1886)는 본이 全州이고 자는 鞏甫, 호는 石隱이다. 壽靜齋 柳鼎文의 손자이고, 伯窩 柳致孝의 아들이다. 유고가 있다.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