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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82.4717-20130630.06592570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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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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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882
형태사항 크기: 24 X 40.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일월 재령이씨 인려후손가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2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1882년 2월 4일에 柳基鎬가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寧海 仁良의 벗에게 보낸 편지이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간 후 새해가 되었는데 공부에 전념하였는지 걱정하였다. 학업이 중지됨이 없이 더욱 진보하기를 바라였다. 上村에서는 상이 끝났지만 사람들이 슬퍼하여 여윌 것을 걱정하였다. 從氏가 기필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려고 하여 모인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만류하였다가 지금 보내는데 그 사람의 마음이 끝내 풀리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붕우의 희망에 부응하기를 바라였다.
김정민

상세정보

1882년 2월 4일에 柳基鎬가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寧海 仁良의 벗에게 보낸 편지
1882년 2월 4일에 柳基鎬가 공부를 독려하기 위해 寧海 仁良의 벗에게 보낸 편지이다.
朝夕으로 같이 있을 때는 특별한 일임을 몰랐는데 송별함에 미쳐서 비로소 쉽게 얻을 수 있는 만남이 아닌 줄 알았다고 하였다. 문안 편지를 받아 위로됨이 많다고 하며 헤어질 때의 서운함은 절로 만나기 이전이 아니어서 떨쳐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從氏 甥君이 왔을 때 堂闈께서 새해에 더욱 건강하고 당신의 기거가 평안한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다행스러워 하였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일로 공부에 전념하지 못했을듯하다고 하며 그냥 시간을 너무 보내지는 않았는지 걱정하였다. 일이 혹 그 應接하는데 따른 방해를 면하지는 못했을 것인데 의지는 중지됨이 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며 더욱 진보하기를 바라였다. 자신은 쇠약한 몸에 또 나이를 더해 늙음을 알만하다고 하면서 또 게을러져 스스로를 단속함이 없어 가련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고 하였다. 上村의 祥事는 이미 삼년상이 끝났지만 계절이 바뀌며 시간이 흐르는 데 따른 허전한 아픔을 실로 마음 가지기가 어렵고 식구는 다행히 병을 면하였지만 보는 것마다 슬퍼 살이 빠질 것을 염려하였다. 從氏가 기필코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려고 하여 그의 性情을 헤아리건대 불어난 강 건너에서 감정을 조절하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어서 모인 객이 힘을 합하여 만류하였다가 지금 비로소 보낸다고 하였다. 그러나 大忌를 攝行함은 저 사람의 情禮에 크게 미안하나 상황이 장애가 된 것이니 만번 위로하여도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 걱정이라고 하였다. 끝으로 독실히 공부하여 붕우의 희망에 부응하기를 바라였다.
발급인 柳基鎬(1823~1886)는 본이 全州이고 자는 鞏甫, 호는 石隱이다. 壽靜齋 柳鼎文의 손자이고, 伯窩 柳致孝의 아들이다. 유고가 있다.
김정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2년 류기호(柳基鎬) 서간(書簡)

翼洞侍幌回奉。

朝夕之接。而不知爲異事矣。及其
送別也。始覺其不易得之會。而乃
若常有之爲。追恨無及也。回便得
奉惠問。慰感多矣。鞭岐分袖
之悵。自非更接芝宇之前。除了不
得也。從氏甥君來。伏審
堂闈氣體事。新年增祉。
侍外起居珍穆。慰幸何等。課工
歸侍後。卽値餞迓之擾。想不能專
致力。而猶不爲太放過耶。事爲或不免其
應接之妨。而志意貴不令有間斷
之節。幸勉加進長。如何如何。弟。衰
骸又添齒。其老可知。日用間又頹懶。無
檢攝。一憐一愧。無足與朋友道。奈何。
上村祥事。已畢三年。易易慨廓之慟。
實難爲情。眷節幸免生病。而見
皆悲哀。換脫可念耳。從氏必欲犯危
涉發去。而量其性情。不能裁節於
漲江之岸。會客合力挽止。今始送去。然
大忌攝行。在渠情禮大未安。而勢
所礙也。萬慰之。終不釋可念耳。餘惟冀
穩侍篤做。以副朋友之望。千萬。
壬午 二月 四日。弟 柳基鎬 謝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