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11월 4일, 響山 李晩燾가 혼사 등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82년(고종 19) 11월 4일에 響山 李晩燾(1842∼1910)가 혼사 등과 관련하여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전에 山雲 편에 편지를 부쳐서 不敏하였던 자신의 죄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軍亂 통에 현재 그 편지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자신은 이렇게 인사에 소홀함에도 불구하고 柳基鎬는 이미 맺었던 약속을 어기지 않고 交拜의 의식을 送行한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또한 柳基鎬가 한 몸으로 우리 유학의 생사의 고비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에 유언비어[流丸]가 그친 것은 柳基鎬만을 위해 기뻐할 일은 아니라고 축하하였다. 또한 중간에 몇 권의 책을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柳基鎬의 기력이 전보다 더욱 낫다는 것이 전하는 사람이 잘못 전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柳基鎬가 이해에 3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李晩燾 자신은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있다며 근황을 전하였다. 끝으로, 柳基鎬가 函幣를 넉넉히 한 것은 크게 儒家의 본분에 어긋나니 어찌 줄이지 않아서 일시적인 외면적 아름다움만을 더하였느냐고 하면서, 황송해 하였다. 나머지 사연은 別紙에 적었다고 하면서 끝을 맺었다.
殉國烈士 李晩燾와 石隱 柳基鎬는 서로 사돈지간이다. 李晩燾의 딸인 眞城 李氏가 柳基鎬의 장남인 奮山 柳淵鱗과 혼인하였던 것이다. 이 편지도 그들의 혼인과 관련하여 李晩燾가 보낸 것으로 보인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