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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김형모(金瀅模)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82.4717-20130630.0103257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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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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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형모,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82
형태사항 크기: 25.9 X 3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2년 김형모(金瀅模) 서간(書簡)
1882년(고종 19) 11월 8일에 김형모가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선 상대를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병 때문에 갈 수 없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한 집안 사람인 김용락이 상대편으로 간다는 사실을 늦게 알아 결국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용락이 다시 돌아온 편으로 상대의 건강 등 안부를 확인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다시 상대와 상대 주변의 근황 등을 물었다. 상대가 임천서원 사액에 관한 상소 운동으로 유배형을 겪은 일을 언급하며 유림들의 액운이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자신의 병에 대해 언급하였고, 추운 날씨에 집 밖으로 나가 있는 부친과 막내 동생을 걱정하는 등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김동현

상세정보

1882년 11월 8일, 柯山 金瀅模가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82년(고종 19) 11월 8일에 柯山 金瀅模(1856~1930)가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근황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한 번 상대를 뵙는 것을 상대가 韶州(義城인 듯함)에 구속되어 있던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달 동안에 하루도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나 끝내 찾아가지 못했으니, 비록 병 때문이라고 스스로 변명한들 어찌 상대의 이해를 바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일전에 春坡 族君인 金龍洛이 가셨던 일을 자신이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에 그 편에 편지로 인사드리는 것도 하지 못하였으니, 너무나 죄송했다고 하였다. 그가 돌아왔을 때에 평소와 다름없이 상대의 기력이 건승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평소 상대가 수양한 힘을 증험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어 주변 친족 등의 안부를 물었다.
金瀅模는 상대가 겪었던 횡액은 퇴폐한 世道 탓으로 돌리고 뒤미처 慨然해 할 것도 없지만, 吾黨의 後生들이 도무지 善을 행하는 데에는 나태하니 儒學界의 일대 액운이라고 하였다. 金瀅模 자신은 본래부터 병이 많은데 이번 겨울에는 기력이 빠짐을 더욱 느끼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얼굴 부위 종기와 독감에 대해 언급하면서, 편지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여러 번 인사를 드리고자 마음먹었으나 그만두고 말았던 것이 이와 같은 實病에 따른 것이었음을 강조하였다. 막내가 돌아온 지 막 며칠이 지났고 老親께서도 이어서 돌아오실 듯한데, 갑작스런 추위가 이와 같으니 매우 애가 탄다고 하였다. 金瀅模는 자신의 身病이 고질병이 되어 가고 갖가지 불쾌한 일이 많이 생겨서 본분상의 사업에 두서가 없으니 이것도 운명이라고 하였다. 從兄도 예식이 임박하였기 때문에 날마다 분주하게 지냈으나 끝내 지나치게 간소하게 처리하였으니, 비록 실정을 살펴 용서해 주시더라도 부끄럽다고 하였다.
편지 본문에서 구속 운운한 것으로 보아 수신자는 石隱 柳基鎬(1823~1886)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1864년(고종 1)에 臨川書院의 사액을 청하는 일로 상소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데 이어, 1870년 겨울에 임천서원 청액운동을 전개하다가 강원도 金化에 유배되었다. 또한 1881년 영남만인소가 일어나고 李載先 사건이 일어나자 嶺儒의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수배되었고, 이해에는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885년에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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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82년 김형모(金瀅模) 서간(書簡)

省式。一番晉候。蓋自韶州滯縲之日。至于今數朔之間。無日不擬之。而竟
不成一行。雖或以病自諉。安敢望俯燭實故之如是也。日前春坡族君之行。知之
亦晩時。又失因便替伸。罪悚尤萬萬。其回。伏聞
調中氣力康護。榮衛勝似平昔云。益可驗平日行素之力。而雖近日天心亦
有所護惜也。
前宅耋候安寧。同堂諸節均宜否。從君承已送醮有日。想不免煞費
神用。然竊覵叔主年來衰損。傳家付畀之責。不能不漫時奉慮。而今聞
定名加冠凡百。粗有分付處。尤豈非區區幸賀耶。至若過去橫罹。付之一番世道。而無
足追慨然。吾黨後生。都無自己實得。適見門而困衝。而怠於爲善。則未
始非吾道大㤼厄耳。痛心痛心。重表侄降服人。自來善病。今冬倍覺憊綴。面部
毒瘇。迨至數十創。而冷輒肆毒。靡日不寒凜作痛。大抵一候之累擬旋
止。蓋緣實病之如是也。阿季歸纔數日。而老親似或繼此還旆。然猝寒如
此。焦煎政無所不到耳。自念身病。漸至沈痼。又種種多不快人意處。有難向
外說道。而渠自薰惱。其於本分事業。全沒頭緖。是亦命也。伏歎奈何。從兄亦
日事擾擾。認是緣禮幹在邇。然畢竟是過於從簡。雖或情恕。而亦係愧窘
耳。忽聞樊溪族叔有此行。撥病胡草。不成字劃。尤覺罪汗耳。餘。伏祝
氣力康護。以副吾道之祝。不備上白。下鑑。
壬午 至月 初八日。重表侄服人 金瀅模 上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