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8월 8일, 肯庵 李敦禹가 이조참판 임명 사실을 알리고 거취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82년(고종 19) 8월 8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이조참판 임명 사실을 알리고 거취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李敦禹는 자신이 어제 特敎를 받아서 天官亞卿[이조참판]에 제수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마치 깊은 골짜기에 떨어진 듯이 너무나 놀랐는데, 더구나 局勢가 위급한 날에 자신과 같은 老臣은 하늘을 떠받치고 해를 받드는 정성을 다하지도 못했는데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좋은 관직을 앉아서 차지하게 되었으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이냐고 하였다. 李敦禹는 이러한 恩命이 여러 대에 걸쳐 소멸되지 않고 남아 있던 蔭德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두 집안의 友誼로 볼 때 급히 알려 드리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사람을 보내 말씀드린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방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이는 이조참판 임명에 관해 자신이 거취를 어떻게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침을 달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끝으로, 지난번에 泗濱書堂(훼철된 후의 泗濱書院인 듯함)의 노복 편에 편지를 써서 상대 숙부에게 보내어 晩愚亭에서의 모임을 이달 열흘 전으로 약조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는 후일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면서, 양해해 달라고 하였다. 참고로 『승정원일기』 고종19년 8월 3일 기사에 前 참의 李敦禹를 이조참판에 제수하라는 임명 기사가 보인다. 추신에서는, 京伻에게 줘야 할 돈을 좀 보내달라고 하였고, 敎旨가 아직 내려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병을 핑계로 사직하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하다고 하면서 이에 관한 儀節도 보내달라고 하였다. 상대 숙부께 안부편지를 드리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뜻을 전해달라고 하였고, 變服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府伯과 鎭將이 모두 이미 黑冠을 착용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모두 이미 變服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이 괜찮은지 물었다.
肯庵 李敦禹는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高孫이다. 그런데 壺谷 柳範休의 아들인 柳魯文이 李象靖의 아들인 李埦(李敦禹의 증조부)의 막냇사위였기 때문에, 李敦禹에게 柳魯文(곧 柳基鎬의 伯祖)은 大姑母夫가 된다. 李敦禹와 石隱 柳基鎬는 이런 戚分이 있는 데다, 모두 定齋 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서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 이 편지의 수신자도 柳基鎬일 것으로 보인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