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윤7월 12일, 박주종이 임천서원의 예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함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
1881년(고종 18) 윤7월 12일에 山泉 朴周鍾(1813~1887)이 臨川書院의 예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함을 알리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당신의 편지를 받아 위로되고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자신은 병이 심해 아우의 환갑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고 하였다. 이어서 지난번 편지에서 하신 자세한 말씀은 잘 알겠다고 하였다. 상대가 남들과 교제함에 있어 치밀하고 상세히 살펴서 이처럼 조금도 대충 넘어가지 않으니, 자신은 참으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다만 그 편지의 말단을 보건대 자신을 잘못 칭찬한 것에 대해서는 상대가 끝내 오류를 면치 못하신 것이라고 謙辭를 전하였다.
臨川書院의 會禮는 훌륭한 일이니 자신도 초대에 응해 참석하여 강설을 듣는 初平이 되고자 하였으나 설사증이 가볍지 않아서 문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신 조카들을 보낸다고 하면서, 사리에 어두운 조카들을 상대와 여러분들이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元直 柳廷鎬 형제와 떨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만나서 정담을 나눌 기회가 없으니 그리운 마음이 그치지 않는다고 하면서, 조만간 만나러 가겠다는 자신의 뜻을 전해 달라고 하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初平은 李初平이 周敦頤의 강설을 듣고 진취한 고사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발급인 朴重慶은 자는 聞遠, 호는 山泉이고 본관은 咸陽, 본적은 安東이다. 부친은 僉知中樞府事 朴弼寧이며, 외조부는 柳成龍의 후손인 柳貞祚이다. 1863년(철종 14) 三政의 실무에 관해 올린 8개의 대책이 으뜸을 차지하였다. 興宣大院君이 서원 철폐령을 내려 서원을 폐쇄하자, 영남 선비들과 함께 1877년(고종 14) 서원 복원을 위한 상소를 올리는데 앞장섰다. 저서에 『東國通志』 ‧ 『勉學類鑑』 ‧ 『四七攷證』 ‧ 『鄕約集說』 등이 있다. 편지에 등장하는 元直은 柳廷鎬(1837~1907)를 의미한다. 부친은 柳致任이고 定齋 柳致明과 西山 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에 침잠하는 한편, 후학 양성에 힘썼다. 문집으로 『拙修齋集』이 있다.
이 편지는 영남 지역에서 학문적 교류와 전파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남의 학자들은 서로 편지를 보내 의견을 주고받았으며 서원에서 강학을 열어 학문적 이론을 의논하고 전파한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