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11월 30일, 肯庵 李敦禹가 곡물의 처리 문제에 대해 묻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81년(고종 18) 11월 30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곡물의 처리 문제에 대해 묻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가 편지를 보내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병을 앓은 뒤에 글 쓰는 일에 소홀하여 답장을 지체한 것에 대해 미안했던 마음도 전하였다. 상대의 편지로 알게 된 소식 중에 乃英 兄에게 유배를 보내라는 명이 내린 것에 대해, 세상에 어찌 이러한 일이 있단 말인가라고 하며 분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李敦禹는 자신이 석 달 동안이나 병을 앓았다가 다행히 하늘의 보살핌으로 회복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仙方을 배우지 못하였으니 끝내 餓鬼가 될 것이라고 하면서, 한탄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그럼에도 역시 가장 겁나는 것은 아이들이 빈궁한 환경 때문에 그 천성을 잘 보존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桃原의 일은 이른바 功城이 30금을 보낸 뒤에 올해 추수한 것까지 싹 걷어 갔다고 하면서, 세상에 어찌 이러한 큰 도둑이 있단 말이냐고 하였다. 근래 注坪과 高巖 등지에서 약간의 분량을 미리 판 것이 있는데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고 하면서, 장차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상대의 말씀을 기다리겠다고 하였는데, 구체적인 내막은 파악하기 힘들다. 끝으로, 내년 정월의 모임에는 왕림해 주실 수 있겠냐며 방문을 청하였다.
肯庵 李敦禹는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高孫이다. 그런데 壺谷 柳範休의 아들인 柳魯文이 李象靖의 아들인 李埦(李敦禹의 증조부)의 막냇사위였기 때문에, 李敦禹에게 柳魯文(곧 柳基鎬의 伯祖)은 大姑母夫가 된다. 李敦禹와 石隱 柳基鎬는 이런 戚分이 있는 데다, 모두 定齋 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서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 이 편지의 수신자도 柳基鎬일 것으로 보인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