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7월 25일, 이돈우가 『廬江顚末』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80년(고종 17) 7월 25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廬江顚末』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른바 屛虎是非와 관련된 부분을 중심으로 본 편지의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屛儒들이 원근의 고을에 무고하는 내용의 글을 널리 유포시키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들이 이에 대해 해명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허술한 것 같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이곳의 논의가 峻發하여 이번 8일에 高山書堂에 모여서 『여강전말』 가운데 가장 긴요한 글을 抄出하여 정리해서 1책으로 만들어 刊布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자신들은 모두 노쇠하여 죽음이 가까워진 사람들이니 훗날을 기다릴 수 없기 때문에 날짜를 정하여 장차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 일에 대해 류기호 측에 통보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이 모임에 류기호와 彛執(石下 柳建鎬)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을 통해 류기호가 虎儒의 중심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돈우는 부디 8일에 貴中에서 가지고 있는 『여강전말』을 가지고 꼭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자신 쪽에서 연전에 베낀 것은 河台가 빌려 가서 아직 돌려주지 않았기에 사람을 보내어 돌려받을 계획이라고도 하였다.
추신에서는, 류건호에게 따로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고 하면서 이 편지로 돌려 보시라고 당부하였다.
발급인 이돈우는 본관이 韓山으로, 자는 始能, 호는 肯庵이다. 아버지는 秀應이고, 大山 李象靖의 高孫이다. 그런데 壺谷 柳範休의 아들인 柳魯文이 이상정의 아들인 李埦(이돈우의 증조부)의 막냇사위였기 때문에, 이돈우에게 류노문(곧 류기호의 伯祖)은 大姑母夫가 된다. 이돈우와 류기호는 이런 戚分이 있는 데다, 모두 定齋 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서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