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7년 1월 19일, 李敦禹가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7년(고종 14) 1월 19일에 肯庵 李敦禹(1807~1884)가 자신의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요사이 연례 모임에 상대가 왕림해 주기를 바랐으나 참석하지 않은 것에 아쉬운 마음을 표하였다. 이어, 상대 및 그 숙부, 堂內 여러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외롭게 기거하는 감회를 점점 억제하기 어려워진다고 하였고, 宗家의 祧遷으로 인해 늙은 과부와 어린 喪人이 울부짖는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자신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고 하였다. 선대의 亭子에 관한 일은 갈수록 난마처럼 얽히고 있다고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산 밖에 있는 논에 대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임시방편적 조치를 취했다고 하면서, 상대를 모시고 대략 한 차례 모임을 열어 처리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이번에 靑鳧(청송)의 산 아래에 또 일이 있어서 장차 오늘쯤 동쪽으로 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모든 일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아서 큰 고민인데 뼈에 사무칠 정도로 기근까지 심하여 장차 문밖을 나설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이런 점에서 더욱 간절히 상대의 방문을 청하였다. 申景北이 끝내 이달 11일에 사망했다고 하면서, 수십 년 동안 情誼가 매우 각별하였는데 갑자기 죽게 된 것에 슬픈 마음을 전하였다. 洪大營의 일이 어긋났으니 그를 대신하여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바빠서 상대 숙부에게 안부편지를 보내지 못하니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말씀 올려 달라고 하였다. 從孫婦는 歸覲한 뒤에 연이어 평안하게 지내고 있느냐며 안부를 물었다.
肯庵 李敦禹는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高孫이다. 그런데 壺谷 柳範休의 아들인 柳魯文이 李象靖의 아들인 李埦(李敦禹의 증조부)의 막냇사위였기 때문에, 李敦禹에게 柳魯文(곧 柳基鎬의 伯祖)은 大姑母夫가 된다. 李敦禹와 石隱 柳基鎬는 이런 戚分이 있는 데다, 모두 定齋 柳致明의 문인으로서 서로 깊은 교분을 맺었다. 이 편지의 수신자도 柳基鎬일 것으로 보인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