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10월 20일, 石隱 柳基鎬가 巖后 李晩慤의 장례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靜村 李文稷에게 보낸 편지
1874년(고종 11) 10월 20일에 石隱 柳基鎬(1823~1886)가 巖后 李晩慤의 장례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靜村 李文稷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柳基鎬는 편지의 서두에서 격조하였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어 근래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 李文稷과 同堂의 여러 사람 및 아들들이 평안하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柳基鎬는 外祟로 인하여 고생하는 근황을 전해 주고, 오로지 자신이 保養하는 데에 신경을 쓰느라 스스로를 살피고 반성하지 못하니 李文稷의 警責을 받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叔父께서 병이 악화되는 지경은 가까스로 면하였으나 근력이 많이 상하셨다고 하면서 애타는 심정을 전하였다. 또한 上村의 兩庭께서 다행히 건강하시기는 하지만 칠십의 쇠약한 연세이니 어찌 활기차게 지내실 수 있겠느냐고 하고, 그러함에도 外地의 일을 경영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매우 걱정되고 두렵다고 하였다.
巖后 李晩慤의 葬禮 날짜를 李文稷에게 통보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들이 어떻게 차마 그를 지하에 묻어 보낼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함께 모여서 영결하여 그 혼령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同堂 여러분들이 함께 참석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죽은 사람을 위해 간절히 참석을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추신에서는, 明應에게 편지로 통보하여 그로 하여금 쌓인 재물을 가서 거두게 하였던 일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미상이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巖后 李晩慤은 병조 참판에 임명되었던 李泰淳의 손자이자 통덕랑 李彙運의 아들이다. 柳基鎬가 李彙運의 딸인 眞城 李氏와 혼인하였으므로, 李晩慤과 柳基鎬는 서로 처남매부지간이 된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