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9월 22일에 강유가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4년(고종 11) 9월 22일에 姜鏐가 여러 근황을 전하고 교감하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달 들어서 완전히 격조하여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敬兄이 방문하고 그 편에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를 받았는데 그것을 읽으니 마치 당신을 직접 뵌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직접 만나는 것만 못하니 왕림해 주시기를 다시 바란다고 하면서 내려주신 편지의 "방문을 도모하겠다.[圖之]"라는 2글자를 철석같이 믿는다고도 하였다. 또한 찬바람이 많이 부는데 혹시라도 感嗽로 인하여 건강을 상하시지 않았는지 묻고 敬兄이 와서 당신께서 대체적인 근황이 지난번과 한결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어버이를 모시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나 아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이어서 멀리서 소식을 받았는데 官에 아무 일이 없고 성균관도 그러하다고 하였다. 將作丈은 이미 사면을 받아 옥을 나오셨다고 하면서, 전후로 모두 11일이 되는데 딱히 후유증은 없다고 從兄이 와서 얘기해 주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將作은 繕工監에 재직하고 있는 관원을 의미한다. 끝으로, 나머지 사연은 내달 상대가 왕림하였을 때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하였다.
또한 편지 끝에는 추록이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교감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즉 晩愚亭에서 사람들이 모여 校勘하는 일이 지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였다. 또한 敬兄이 무사히 도착하였는지 물었으며, 내달 당신의 행차가 무산되지 않기를 다시 기원하였다.
이 편지의 경우 발급인의 행적이 자세히 밝혀 있지 않아 이 편지가 써진 갑술년의 연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晩愚亭을 통해 갑술년을 1874년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만우정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7호로 원래 임하면 사의동에 있었으나 임하댐 수몰로 현재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定齋宗宅 오른쪽으로 이전 보수하였다. 만우정은 柳致明이 1855년 강학공간으로 건립한 곳으로 그가 후진양성을 한 장소이다.
이 편지를 통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중앙의 소식을 전달받았으며 일을 시행하던 중에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서로의 의견을 어떻게 제시 하였는지를 알 수 있을 자료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