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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71.4717-20130630.01032570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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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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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만각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1
형태사항 크기: 27.8 X 41.7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1871년 2월 12일, 이만각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다행히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상대 종씨의 답장을 받고서 그곳의 풍토와 기거 생활이 모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가 산해금강산 사이에 있으니 그 좋은 경치에 도움을 받아 탁 트인 흥취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글이 더욱 진전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를 위해 깊이 기뻐한다고 하였다. 일전에 원직의 편지를 보고서 전염병 기운이 없어져가고는 있으나 장로들이 모두 피접한 곳에서 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고 하고, 연재 군이 현재 단사에 머무르면서 날마다 와서 배우기를 청하니 『朱子語類』의 「訓門人」을 읽게 하였는데 해설하는 과정에서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의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였다.
김선주

상세정보

1871년 2월 12일, 이만각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1년(고종 8) 2월 12일에 愼庵 李晩慤(1815~1874)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별하였을 때에 근심스러운 모습을 띠어서 멀리 떠나가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둬서는 안 되지만 자신과 상대는 심경이 남다른데도 어쩌면 그리도 무정하게 길을 떠났느냐며 이별의 아쉬운 情恨을 전하였다. 이어 상대 從氏의 요절, 上舍公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멀리서 상대의 심정을 생각하건대 참으로 위로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하였다. 특히 上舍公의 죽음에 대해서는 吾道의 운명과 관련지으며 크게 애통한 심정을 전하였다. 이어, 도착한 뒤로 喪中에 있는 상대의 체후가 어떠하냐며 안부를 물었다. 고을 수령은 본디 우리 사람이니 구제하는 방도에 있어 소원하게 처리할까 염려할 것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까 염려된다고 하면서, 굶주림과 흉년이 툭하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도리어 우습다고 하였다. 그러나 훌륭한 지조와 행실, 견해를 가진 상대가 더욱 전심하여 독서에 종사한다면 천명을 터득하는 공부가 곤경으로 인해 좌절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安峽金城, 高城을 언급하면서, 서로 간에 왕래하기가 어려운 것은 모두 마찬가지이겠으나 소식을 서로 듣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지인으로서 각각의 지역에서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이만각 자신은 다행히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하였으며, 또한 상대 從氏의 답장을 받고서 그곳의 風土와 기거 생활이 모두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가 山海金剛山 사이에 있으니 그 좋은 경치에 도움을 받아 탁 트인 흥취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文雅가 더욱 진전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를 위해 깊이 기뻐한다고 하였다. 일전에 元直(修齋 柳廷鎬)의 편지를 보고서 전염병 기운이 없어져가고는 있으나 長老들이 모두 피접한 곳에서 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고 하고, 淵在 君이 현재 丹砂에 머무르면서 날마다 와서 배우기를 청하니 『朱子語類』의 「訓門人」을 읽게 하였는데 해설하는 과정에서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의 장래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였다. 다만 자신의 형편이 어려워서 그를 기숙시키지 못하여 왕래하는 수고를 겪게 하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끝으로, 편지를 가지고 방문한 湖令이 "興德蔚珍의 수령이 그 지역 士友와 서로 마음이 잘 맞는다."고 하였으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하였고, 고향 소식 가운데 알려 드릴만한 좋은 말이 없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였다.
추신에서는, 오늘이 상대 숙부의 中祥임을 알았다고 하면서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는데, 이를 편지 본문에서는 빼먹고 적지 않았다가 편지의 연월을 쓰면서 비로소 기억해 냈으니 부끄럽다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 이만각은 딸 셋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장녀가 石下 柳建鎬의 아들인 柳淵愚에게 시집을 갔다. 따라서 수신자는 류건호일 것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 없다. 壽靜齋 古宅과 관련지어 보면, 수신자가 石隱 柳基鎬(1823~1886)일 가능성도 크다.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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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71년 이만각(李晩慤) 서간(書簡)

怡然就途之日。不宜作愁恨態。以攬遠去者之懷。而吾與子
心景自別。如何其一似無情也。況向後尊門禍變荐酷
從氏之殀。已是無謂
繼而上舍公奄棄吾輩。値得何等氣數。而致愁也。若是乎吾道
之不振也。遠惟
吾兄情地。誠亦無辭於慰解矣。痛哭何已。謹問安泊以後
服履何似。主倅自是吾人。接濟之方。無慮乎其生疎。而鄕間
所以資給。怕有難繼之恨。却笑飢荒之動輒相隨也。然以
吾兄操履識解。又値超脫一會。益專心從事於讀書知
命之工。庶不被困衡所頓挫也。安峽金城。相距似不甚遠。而
高城又爲大嶺所限。徵逐之難。近遠無殊。而聲息相聞。又當
有間矣。弟幸保昔狀。又得從君回音。知其風土居停俱好
又處山海金剛之間。庶可以助發疎致。爲渠深喜其更進
文雅也。日前得元直書。知沴氣向息。長老俱未還頓。
君見住丹砂。逐日來請業。使看語類訓門人篇。解說
之間。頗不費力。將來可望也。但窘窶中。無以留與共粥飯
使渠作往來之勞。是可恨耳。湖令亦有書來見。謂
興德蔚珍兩處地主。與其土士友。頗相傾倒。殊以爲
幸也。聞臨川方起伻。想多致諸書。有以詳略相發
然鄕信都無好語可相聞矣。此紙亦太濶脫然。幸
勿較絜。須將其間所得。細寄來隨便。亦勿忘以
資臥遊證懷之助也。無物以表遠情。發封當不免一
大笑。是亦不妨作悃款耶。餘。不備狀禮。伏惟
服照。謹狀上。
辛未 二月 十二日。弟 晩慤 拜狀上。

語失侖脊。今日知爲
阮府令公中祥。尤增痛傷。方書年
月始記得。悲愧悲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