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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김헌락(金鍾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71.4717-20130630.010325700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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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헌락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71
형태사항 크기: 29.6 X 37.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1년 김헌락(金鍾九) 서간(書簡)
1871년 4월 25일에 김헌락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가서 위문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던 찰나에 외종형의 편지를 받아 외종형과 맏이의 안부를 알게 되어 안심되었다고 하였다. 장례가 임박한 것에 대해 슬픈 마음을 전하고, 접대하는 일에 골몰하다가 조금 조용해진 자신의 근황도 전하였다. 아전들이 조세를 날마다 독촉하고 있는데 이는 이양선의 출몰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고 하면서, 조용히 지냈던 동협에서 빨리 돌아온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상소에 관한 일은 온건파와 강경파 중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으며 내극의 일은 아직 확실한 소식을 못 들었다고 하면서 장례 때 만날 것을 기약하고 편지를 끝마쳤다.
서진영

상세정보

1871년 4월 25일, 金獻洛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1년(고종 8) 4월 25일에 慵庵 金獻洛(1826~1877)이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곧바로 나아가 위문하지 못하였던 것을 한스러워하던 차에 문득 外從兄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편지를 읽고서 長途를 여행한 뒤에 슬픔에 잠긴 와중에서도 外從兄의 기력이 손상되지 않았고 맏이도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안심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葬禮가 임박한 것에 대해서는 悲戀의 정을 전하였다. 金獻洛 자신은 처음 왔을 때에 접대하는 일에 골몰되었다가 요사이 조금 조용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에 온갖 유혹이 생겨나고 있다고 하였으며, 다만 날마다 兒婦 등 식구들과 더불어 巴山에서 밤비가 내렸을 때의 일에 대해 술회하면서 줄곧 칩거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 아전들이 租稅를 날마다 독촉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고 이러한 것이 아무래도 異樣船이 출몰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면서 조용히 지냈던 東峽에서 너무 빨리 돌아온 점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上疏하는 일에 대해서는 온건파와 강경파 중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끝으로, 乃極의 일은 용서를 받을 기미가 있는 듯하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한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고 하고, 나머지는 葬禮 때 직접 만나서 하겠다고 하였다.
壽靜齋 柳鼎文의 사위로 承旨 金鎭右가 있다. 金鎭右全州柳氏와 혼인하여 慵庵 金獻洛과 雲圃 金景洛 · 義城金氏(大溪 黃在英의 처)를 낳았다. 따라서 金獻洛은 全州柳氏 집안의 외손이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1년 김헌락(金鍾九) 서간(書簡)

兄主前 上候書。
省式。方以未卽趨慰爲悵。忽承
下敎。藉審長途跋涉之餘。悲叢滾汨之中。
保無損害
氣力。伯亦穩。傾慮之餘。豈勝爽釋。而
襄禮在邇。悲廓有倍區區悲戀。尤當何如。外從弟
初來時。汨於酬接。如何支吾。而日間稍靜。百誘如
掛。念到履歷。無怪如是。但日與兒婦諸累。
追說巴山夜雨時事。稍慰向來塊蟄之思。然
徵租索賦。壕吏日督。氣像凜怖。又是年
來初覩。豈西來船警。有以致之耶。追思
東峽靜蟄。恨其鮮還尙早也。疏事。緩峻異
論。未知何者竟勝。而顧今時象。政有院事。
何足說之歎耳。乃極事。似有分揀之機。
而姑無的聞耳。餘。在襄禮時。握慰

撥格。不備。伏惟
下察。
辛未巳月卄五日。外從弟功服人 金獻洛。拜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