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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황재영(黃在英)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70.4721-20130630.01032570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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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황재영, 류기호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작성시기 1870
형태사항 크기: 32.2 X 45.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0년 황재영(黃在英) 서간(書簡)
1870년 2월 9일에 황재영이 자신 쓴 ‘隨錄’을 평가해 준 상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상대가 문상하러 와 준 것에 대해 언급하며 감사해 하고 또 그때 정성이 부족하여 오래 머물게 하지 못한 점, 이후 상대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못하게 된 이유를 밝히며 죄송해 했다. 이어서 상대와 상대 숙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경우는, 삼년상을 마치고 난 이후 집안의 근황을 전했다. 본론으로, 자신이 쓴 수록에 대해 상대의 가르침을 받게 되어 감사하고 또 경계심이 든다고 하였다. 또한 이 저서를 쓴 것도 사실 당돌한 부분이 있는데 하물며 상대가 책의 제목까지 붙여 줘서 부끄럽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870년 2월 9일, 大溪 黃在英이 자신의 隨錄에 대한 상대의 평가에 관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70년(고종 7) 2월 9일에 大溪 黃在英(1835~1885)이 자신의 隨錄에 대한 상대의 평가에 관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가 몇 백리 먼 길을 직접 와서 조문해 주었던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자신의 정성이 부족해서 상대를 더 머물게 하지 못하여 비를 맞게 하였으니 오랫동안 죄송스런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설을 쇠기 전에 金溪의 인편을 통하여 9월 12일에 작성하신 편지를 받고서 매우 고마웠으나 인편이 전혀 없었고 黃在英 집안에 사고가 많이 터져서 답장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황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이어 신년에 들어서 상대 및 亞庭(숙부)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 한들景中 兄을 만나서 대략의 상황을 물어보기는 하였으나 아직 근래의 상세한 안부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黃在英 자신은 어느덧 삼년상을 마치게 되니 애통한 마음이 한량없다고 하면서, 다행히 어버이와 권솔들은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黃在英은 지난가을 며칠 동안 상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 십년 동안의 독서에 대적할 만한 것이라고 여겼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대의 편지 내용이 欣歎이나 漫浪的인 부분이 많고 敬謹이나 規勉的인 부분은 적었으니, 더욱 자신으로 하여금 경계의 마음이 들게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으로는 師友로부터 받는 유익함이 반드시 肅容을 莊攝하는 때에 있는 것은 아니고 여유롭게 담소하면서 주선하는 데에도 기쁘고 각성되는 부분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觀感興起하는 바에 있어서 도리어 깊고 간절한 것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의 隨錄이 당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가르침을 청하는 데에 급하여 감히 숨기지 못하였는데, 상대가 도리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題目을 붙여 준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이 小白山의 궁벽한 골짜기에 있는 변변치 못한 사람이지만 人心이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자석이 바늘을 당기고 호박에 검불이 붙듯이 하니 지극히 어리석은 자신의 자질이라도 專一하기만 하면 천리 밖의 사람과 서로 감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였으며, 답장이 늦어진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하였다.
大溪 黃在英榮州 昌原 黃氏 문중의 걸출한 학자이다. 그는 白野 黃中愼의 손자이자 左副承旨 黃仁夏의 아들로, 定齋 柳致明의 제자이다. 1851년(철종 2)에 承旨 金鎭右 집안에 장가를 들었는데, 金鎭右는 壽靜齋 柳鼎文의 사위이다. 金鎭右는 全州 柳氏와 혼인하여 慵庵 金獻洛과 雲圃 金景洛, 義城 金氏(大溪 黃在英의 처)를 낳았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시기적으로 石隱 柳基鎬인 것으로 보인다.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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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70년 황재영(黃在英) 서간(書簡)

省式。不謂數百里而遠。逶迤臨弔。已是出於尋常望想
之表。而誠薄縶駒。使徒御窘於陰雨。此心愧悚。久猶不
釋。歲前自金溪伏承九月十二日
下狀。滿幅繾綣。銘感萬萬。而苦無便梯。且緣私家多事。迄
今闕謝。每或循省。只增惶恧。伏未知新年
靜中動定。爲味道增休。
亞庭僉氣力萬安。頃逢大坪景中哀兄。歷叩大致。而猶未
得近日節度之細微。只時擎手敎。不任馳誡之至。
外除人。遽終二十七月制。痛廓愈覺無涯。而幸親候做度。眷集俱
保耳。第念前秋數宵承誨。竊以爲可敵十年讀書。
來敎反有欣歎勝而敬謹少。漫浪多而規勉闕之嘆。尤令人警
惕。然區區賤慮。則師友資益。不必盡在肅容莊攝之際。從容談笑。款曲周
旋之地。亦不無洽然而悅。恍然而醒者。其所觀感興起。反或有深切焉耳。
如干隨錄之妄塵崇照。極知其唐突。而急於請敎。不敢有隱。
執事乃反加之。以不敢當之題目。於是乎深。惟渠之不務切實。先事夸毗。
使言有物之君子。亦不免見瞞也。愧死愧死。黃花佳節。携一壺酒。躡萬
仞岡。方其逸氣之遐想也。不但東魯多君子。雖尙友千古可也。乃獨
念及小白窮峽。每下人品何也。豈人心相感。如物類之磁引針琥拾芥。
雖至愚之質。苟能專一於此。則乃或應之於千里之外耶。以我心憧憧。亦信
下敎之非偶然而已也。拜際未期。只祈德音之禠承。而承書半載。未遑修答。
頹惰如許。又安敢望長者之頻賜敎誨耶。紙縮辭蔓。不備上謝禮。
庚午 二月 初九日。下生外除人 黃在英 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