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7월 1일, 李晩慤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61년(철종 12) 7월 1일에 愼庵 李晩慤(1815~1874)이 근황을 교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로부터 받은 한 장의 편지가 淸凉散을 복용한 것보다 자신의 마음을 더 개운하게 했다고 하였다. 또한 편지를 읽고서 상대가 평안하며 堂內 여러분들이 한결같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아욱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도 맑은 정취이니 詩文과 비교해 보아도 족히 有用의 학문이 될 만하다고 하면서, 보내준 편지에서는 어찌 탄식하는 말을 하였느냐고 하였다. 李晩慤 자신은 다행히 현재 병은 없으나 매우 심한 더위로 인하여 분수에 따라 독서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丈席(定齋 柳致明을 가리키는 듯함)의 병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두려웠으나 곧장 만나 뵐 수 없으니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伯憲(柳章鎬)을 만나보니 옛날의 정다운 얼굴 그대로였다고 하면서, 그러한 변치 않는 人情은 진실로 大賢이 아니면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 찬탄하였다. 柳章鎬는 柳致潤의 아들인데, 바로 이해에 식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李晩慤은 그가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고도 건방진 기색이 조금도 없음을 칭찬한 것이다. 끝으로, 望念間에 한 번 거동할 것 같다고 하면서 그때까지 상대가 보중하기를 빌었다.
발신자인 李晩慤은 딸 셋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장녀가 全州柳氏 집안의 石下 柳建鎬의 아들인 柳淵愚에게로 시집갔다. 수신자는 시기적으로 石隱 柳基鎬인 것으로 보이나, 확신할 수 없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