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6월 20일, 류치임이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이만각에게 보낸 편지
1861년(철종 12) 6월 20일에 起軒 柳致任(1805~1876)이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巖后 李晩慤(1815~1874)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달포 전에 이별한 뒤에 아득히 소식을 듣지 못하였는데 大地가 큰 화로처럼 무더운 가운데 이만각이 살고 있는 곳은 산림의 나무그늘이 곳곳마다 시원할 것으로 생각되니, 이만각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언제나 간절했다고 하였다. 이어, 이만각 및 그 가족과 同堂의 안부를 물었다. 梁山郡守가 말미를 받아 돌아온 지 며칠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여독이 없는지 물었다. 上溪의 葬禮가 이미 거행되었으니 그가 더욱 비통할 줄로 생각되는데, 자신의 집안에 마침 일이 생겨서 한 마디 말도 없었으니 그가 어찌 의아해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류치임 자신은 더위를 감당할 수 없어서 여러 從兄弟들과 함께 晩愚亭에서 旬月 동안 공부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다. 비록 이를 통해서 뾰족하게 학문을 터득하는 것이 없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一身은 요순시대의 태평한 사람이 될 것이니 스스로 자랑할 만하다고 하였다. 瘇乳로 고생했던 이만각의 딸(손자 柳淵愚의 처 眞城李氏) 및 그 아들(柳東羲)의 소식을 전하고, 몇 차례나 설사병을 앓아 기력이 전에 비해 손상된 丈室(이해 10월 6일에 사망한 柳致明을 가리키는 듯함)의 소식도 전하였다. 끝으로, 부득이하게 아이가 혹염 속에 돌아갔으니 매우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참고로 이만각은 石隱 柳基鎬의 婦兄이고, 그의 부친인 李彙運과 定齋 柳致明이 처남매부지간이므로 그에게 柳致明이 외삼촌이 되니, 全州柳氏 가문과 인연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의 첫째 사위가 柳淵愚인데, 류연우는 石下 柳建鎬의 장남이자 이 편지의 발신자인 류치임의 손자이다. 류치임의 입장에서 이만각은 장남의 사돈이 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