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2월 5일, 李晩慤이 자신의 딸을 잘 돌봐주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柳基鎬에게 보낸 편지
1860년(철종 11) 2월 5일에 愼庵 李晩慤(1815~1874)이 자신의 딸을 잘 돌봐주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柳基鎬가 병중에 친필 편지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답장을 바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함께 전하였다. 이어, 柳基鎬가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안부를 물었다. 감기는 그리 큰 병은 아니지만 오래 끌다가 쉽게 치료할 수 없는 고질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반드시 철저히 치료하여 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다만 간호해 줄 사람이 없어서 악화되지 않을 것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자신의 상황과 마찬가지라고도 하였다. 李晩慤 자신은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신세가 스스로 가련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근래 딸아이가 왔고 사돈인 石下 柳建鎬와도 정담을 나누었기 때문에 쓸쓸한 마음에 크게 위안이 되었다고 하였다. 독서는 그만두지 않았으나 병으로 칩거하는 중에 날로 師友들과 멀어져서 유익함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이 두렵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의 딸에게 아껴줄 만한 점이 없음에도, 柳基鎬가 따뜻하게 보살펴 준다는 얘기를 딸로부터 전해 듣고서 자신 부부는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柳基鎬를 만나러 가고 싶지만 보름 전에 이루지 못하면 보름 후에는 大劑를 복용해야 하니 출입할 여가가 없다고 하면서, 柳基鎬가 와줄 수 없겠느냐며 방문을 부탁하였다. 花信風이 빨리 불어서 그윽한 흥취를 돕는 경색은 그리 없지만 함께 독서하기에 딱 좋은 책상과 조반으로 대접할 곡식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방문을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피봉의 "鞏甫"는 柳基鎬의 字이다. 발신자인 李晩慤은 딸 셋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장녀가 全州柳氏 집안의 石下 柳建鎬의 아들인 柳淵愚에게로 시집갔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