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4월 23일, 이만각이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하고 사위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교육을 당부하기 위해 류기호에게 보낸 편지
1859년(철종 10) 4월 23일에 愼庵 李晩慤(1815~1874)이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전하고 사위에 대한 보다 철저한 교육을 당부하기 위해 石隱 柳基鎬(1823~1886)에게 보낸 편지이다.
본 편지는 이만각의 문집인 『愼庵集』 권4에 「答柳鞏甫」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으므로, 잘려 나간 앞부분과 결실된 부분은 이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의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이만각 자신은 돌아가신 스승이 자신에게 전하여 준 무거운 사명을 받들어 독서에 종사하고 초야에 몸을 맡겨서 바람과 꽃, 눈과 달을 식량으로 삼고 구름과 물, 안개와 시내를 집으로 삼아서 세속의 이해와 영욕, 기쁨과 슬픔, 득실을 太虛와 뜬구름에 부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家計가 날로 어려워지고 응접하는 일이 날마다 극심해지게 되자 손끝에 이른 일은 때때로 아무리 쫓아내도 떠나지 않고, 마음속으로 경영하였던 것도 이에 따라 大謬不然(완전히 틀려져서 제대로 되지 않음)하게 됐다고 하면서, 전원에서 머리를 숙이고 지내고 싶다고 하였다. 이만각은 이런 자신의 행태가, 잘은 모르겠지만 君子가 보았을 때에는 먼저 치유되었다가 나중에 병이 났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분주하게 구걸하는 자와 비교해 보면 한층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편지의 끝부분을 「답류공보」의 해당 내용을 참고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류기호의 사위는 화락하고 까다롭지 않은 사람이라서 함께 공부할 수 있을 만하지만 그 성격이 그의 단점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일을 만들어 내기를 좋아하는 버릇을 먼저 없애야만 진취에 대해 따질 수 있으니, 부디 편달해 달라고 하였다. 끝으로, 류기호가 龍潭에 병문안하러 가는 줄로 알고 있다고 하면서, 속히 거동해 주실 수는 없겠느냐고 하였다.
이 편지의 발급인 이만각은 딸 셋을 두었는데, 그 가운데 장녀가 石下 柳建鎬의 아들인 柳淵愚에게 시집을 갔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