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4월 4일, 이병원이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류정문에게 보낸 편지
1839년(헌종 5) 4월 4일에 所庵 李秉遠(1774~1840)이 안부를 교환하기 위해 壽靜齋 柳鼎文(1782~1839)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즈음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으나 늘 일에 시달려서 편지를 보내는 것도 여의치 못하였으니 늘 마음에 걸렸다고 하였다. 이어 상대가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며, 특히 지난번에 예기치 않게 생겼던 병이 이미 나았으리라 생각된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마음이 더욱 수고로운 반면 정무는 더욱 졸렬해지는데 아전과 백성들이 모두 장단점을 알아서 공무가 잘 시행되고 있지 못하기에 그저 괴롭다고 하였다. 햇볕이 따스하고 바람이 온화한 때에 지팡이를 짚고 한가롭게 걸으며 버들 길을 따르던 것을 늘 생각하면 괴리감이 든다고 하였다. 추신에는, 大口와 게포[蟹脯], 南草 등의 선물 목록이 기재되어 있다.
이병원과 류정문은 서로 막역한 교유관계를 맺었다. 당시 이병원은 比安縣監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편지에서의 언급처럼 공무 수행으로 인하여 매우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베푼 선정의 구체적인 내용은 定齋 柳致明이 지은 「內舅所庵李公行狀」에 자세하다.
이 편지의 수취인인 류정문은 자가 耳仲이고, 호는 壽靜齋이고, 兒名은 柳齊文이다. 본관은 全州이고, 증조는 柳長源이고, 조부는 柳道源이며, 부친은 柳範休이다. 외조부는 金江漢이다. 증조와 조부 그리고 외조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5년 과거에 낙방하자 관직에 뜻을 접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예학과 경학에 두루 밝았다. 1838년(헌종 4)에 學行으로 추천되어 惠陵參奉에 제수된 바 있으나 병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슬하에 5남 柳致孝 ․ 柳致敎 ․ 柳致厚 ․ 柳致好 ․ 柳致游를 두었다. 『近思錄集解』를 보완하여 『近思錄集解增削』을 썼다. 문집으로 『壽靜齋集』12권 6책이 전해진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