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1월 6일, 김매수가 관직 제수를 축하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39년(헌종 5) 1월 6일에 金邁銖(1809~?)가 관직 제수를 축하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새해를 맞아 상대가 만복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매수는 상대가 특별히 관직에 제수된 것은 상대를 위해서는 크게 축하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가정의 遺緖를 받들고 知舊의 기대를 위로해 주었으니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아버지를 잃은 김매수는 새해를 맞아서 옛일을 생각하며 서글퍼하니 애통한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또한 老母께서 근래 독감에 걸리셔서 이부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신 지 이미 열흘 남짓 되었는데 병세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것이 일정치 않아서 병간호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면서, 애타는 심정을 전하였다. 끝으로, 누이가 어리석기 짝이 없으니 무익한 생각으로 슬하의 걱정을 끼칠까봐 늘 걱정이라고 하였다.
발급인 김매수는 자가 進吾, 본관은 義城이다. 成均生員 金在恭의 아들이며, 생부는 金在翼이다. 1843년(헌종 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婚脈으로 全州柳氏 집안과 매우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데, 그의 친동생인 金達銖는 定齋 柳致明의 사위이고 그의 누이는 博羅 柳肯鎬에게 출가하였다.
한편, 수신자는 1838년(헌종 4)에 學行으로 추천되어 惠陵參奉에 제수된 바 있는 壽靜齋 柳鼎文(1782~1839)인 것으로 보인다. 류정문은 자가 耳仲이고, 호는 壽靜齋이고, 兒名은 柳齊文이다. 본관은 全州이고, 증조는 柳長源이고, 조부는 柳道源이며, 부친은 柳範休이다. 외조부는 金江漢이다. 증조와 조부 그리고 외조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5년 과거에 낙방하자 관직에 뜻을 접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예학과 경학에 두루 밝았다. 슬하에 5남 柳致孝 ․ 柳致敎 ․ 柳致厚 ․ 柳致好 ․ 柳致游를 두었다. 『近思錄集解』를 보완하여 『近思錄集解增削』을 썼다. 문집으로 『壽靜齋集』12권 6책이 전해진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