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12월 18일, 姜哲欽이 안부를 교환하고 딸의 근행을 부탁하기 위해 사위 柳致孝에게 보낸 편지
1835년(헌종 1) 12월 18일에 渾齋 姜哲欽(1778~1856)이 안부를 교환하고 딸의 覲行을 부탁하기 위해 사위 伯窩 柳致孝(1798~183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姜哲欽은 柳致孝가 서울에 간 뒤에 쓰이는 마음이 전에 비해 더욱 심하였는데 소식을 접할 길이 없어서 그리운 마음이 늘 간절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방금 인편이 이르러 柳致孝의 편지를 받게 되니 마치 天上音을 받은 듯하다고 하였다. 다만 편지를 읽고서 堂上께서 毒感을 앓으셨고 그것이 조금 괜찮아진 뒤에는 宿病을 앓으셨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매우 놀라고 근심했다고 하였다. 柳致孝가 평안하게 지내는 것은 다행스럽게 여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딸(晉州姜氏)의 신병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련하다고 하였다. 전염병이 도처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사위 쪽에도 그러하냐고 물었다.
姜哲欽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만 長姪과 仲婦의 祥事를 차례로 지내고 나니 노년의 심경이 더욱 신산스럽다고 하였다. 이어 柳致孝가 늦도록 과거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심히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장차 어떻게 어른들을 기쁘게 해 드리고 아랫사람들을 무마할 수 있을지, 이에 대해 늘 아이들과 함께 柳致孝에 대해 말하면서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도 하였다. 姜哲欽은 자신의 큰아들이 10월 小晦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疏錢을 鄕中에서 거두지 못하여 債主에게 곤란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막내아들은 別試를 보기 위해서 밤새도록 잠을 참아가며 간신히 『書經』을 암송하였으나 講經 과목이 없었으므로 이러한 계획이 어긋나고 말았다고 하였다. 숙부(芝園 姜世綸)님께서 현재 大司諫 직을 띠고 계시다고 하였는데 朝報를 보니 짜장 헛된 말이 아니었다고 하였다. 딸의 覲親이 7년 동안 미뤄졌다고 하면서, 내년 2월 4일로 날을 정해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仲兒의 재혼은 내년 1월 4일로 날짜를 정해 거행할 계획인데 凡具가 모두 군색하니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신년 달력 1건을 부쳐 보낸다고 하였다.
渾齋 姜哲欽은 姜杭의 증손으로 尙州에 거주하였고,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편지의 ‘稚養’은 그의 字이다. 그의 딸인 晉州姜氏가 壽靜齋 柳鼎文의 장남인 伯窩 柳致孝와 혼인하였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