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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류정문(柳鼎文)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32.4717-20130630.01032570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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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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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정문, 류치명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832
형태사항 크기: 25.9 X 38.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2년 류정문(柳鼎文) 서간(書簡)
1832년 12월 12일에 류정문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류치명에게 보낸 편지이다. 류휘문의 죽음에 대해 한스러운 마음을 표하고, 먼 곳에서 부고를 들은 상대방이 슬픔으로 병이 생길까 염려하였다. 이어서 영천법전의 안부와 장모님의 상으로 인해 아내가 다녀온 소식, 집안의 돌림감기 및 마을의 전염병 소식과 기근이 심각하다는 소식 등도 전하였다. 이휘녕김진화의 안부와 숙직할 때 음식을 실어가는 절차에 대해 묻고, 지금의 직함과 진강하는 책의 종류, 홍문관 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어서 상대방의 관직생활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하면서, 연로한데다 시골 출신이라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였다. 류휘문의 장례를 치르고 그의 남은 식구와 글을 수습하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내년 정월 그믐이나 2월 초에는 장례를 치를 것이니 그 전에 꼭 돌아오라고 하였다. 끝으로, 당부와 종형의 안부를 전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관인편이 종종 있을텐데 어찌 자주 편지를 보내지 않느냐고 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832년 12월 12일, 柳鼎文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柳致明에게 보낸 편지
1832년(순조 32) 12월 12일에 壽靜齋 柳鼎文(1782~1839)이 여러 가지 근황을 전하기 위해 定齋 柳致明(1777~1861)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을 볼 때 수신자는 檢討官으로 재직하면서 泮村에 기거하고 있는 발신자 류정문의 再從姪인데, 바로 柳致明이 당시 弘文館 修撰으로서 經筵 檢討官을 겸직하고 있었다. 이는 매우 장문에 속하는 편지인데, 柳鼎文柳致明에 관한 애정과 관심 등을 엿볼 수 있다. 參奉 好古窩 柳徽文이 돌아가신 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家運이 박해진 것을 한스러워하였다. 차분하게 죽음을 맞았던 그의 면모를 언급하면서, 오십 년 동안 배고픔을 참아가며 독서하였던 내공이 이와 같이 드러났다고 하였다. 이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고를 들었던 상대의 심경에 대해 언급하며 슬픔으로 병이 생기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면서, 기력이 손상되지 않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榮川의 眼痛은 근래 통증이 멈췄다고 하고, 法田의 喪人은 전염병이 아닌 감기에 걸린 듯하나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妻母의 喪事로 인해 아내가 갔다가 돌아왔다는 소식, 大小家에 돌림감기가 일시에 돌았고 마을에 전염병이 생겼다는 소식, 기근이 매우 심각하다는 소식 등도 전하였다. 柳致潤이 진정으로 후회하고 뉘우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미상이다. 君穆 李彙寧과 聖觀 金鎭華가 모두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이 두 사람도 얻어서 타고 올 방도가 있는지 물었다. 入直할 때 음식물을 실어가는 절차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먼 길로 음식을 실어 나르는 것은 결코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지금은 어떤 직함을 띠고 있고 進講하는 것은 무슨 책인지 묻고, 홍문관 관원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느냐고 하였다. 柳鼎文柳致明이 한가롭게 공부만 하다가 관직을 수행하고 있는 부분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또한 늙은 나이(이 당시 정재의 나이 56세임)에 시골 출신의 사람으로서 가는 곳마다 고생하는 것은 분잡한 서울과는 맞지 않는 麋鹿과 같은 柳致明의 성정으로는 결코 감내하기 어려울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빨리 훨훨 털어버리고 내려오는 것이 어찌 물고기가 물에서 활기차게 노니는 것[於魚得計]처럼 제 삶을 얻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柳鼎文은 관직을 즐기지 않고 초야에서 훨훨 활기차게 즐기는 모습이 吾家의 心法이지만 남들의 비방을 살까 염려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말은 두말할 것 없이 비밀로 부치라고 하였다. 서울柳致明이 갈 때 몇 구절 贈行의 글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두었지만 떠나가던 때를 놓쳤고 지금은 또 喪中이니 그만둔다고 하였다. 柳徽文의 죽음에 따라 그의 喪葬을 치르고 그의 고아 및 부인을 돌보며 그의 글을 수습하는 것이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강조하고, 葬禮 전에 柳致明에게 돌아오라고 이르고 있다. 그러면서 내년 정월 그믐이나 2월 초에는 반드시 葬禮를 치를 것으로 본다고 하였다. 堂父님께서 한결같이 건강하시고 從兄님도 전처럼 편찮으시지 않으니 中丁에 禫祭를 지낼 수 있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끝으로, 官人便이 종종 있을 줄로 생각되는데 어찌 자주자주 편지를 보내지 않느냐고 하면서, 柳致明이 좋은 관청에 들어가 고향 생각은 깡그리 잊었느냐고 농담의 말도 전했다.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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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32년 류정문(柳鼎文) 서간(書簡)

去時旣失拚別。向後一味不收問。險歲憂
慮。殆無不至。況道中遞職。而無私馬隨行。此固
在家者之責。而陸續官便。終無一字付來。實
不知因何如此。日夜泄菀。如何形喩。想必不知遞
職。前進入城。而仍又被擸住。不能自由便歸。然本
以不健之身。觸寒撼頓之餘。能不至生病。供職如
宜否。若入經筵。則得覲耿光。小試所學。人生
宦業至此。亦未始不達。果能少勉遁思。可且隨分
優游。不至躁悶難抑耶。從。家中及大坪諸親。僅
免他故。而數日之病。奄失參奉兄主。此何運氣。此何
運氣。豈知家祚凉薄。至此極哉。只是自家素患喘
急。而從初示憊。催促如星火。只罔措遑遑。而有此境。爲日旣
久。轉覺痛入心膂。若使君在傍。或能起得耶。
符到臨歸。從容談笑。無異平常。少無痛楚悲
苦狀。只以數種書。未及整理。眷眷致恨。五十年忍
飢讀書。所驗如此。尤令人傷痛。不能自定。況君千
里聞此。何以爲心。恐有悲悸成病之慮。奈何奈何。雖然自
家旣視以晝夜常理。須千萬堅定。無令過悲致
損。切望切望。金谷從寃祥已過。遯寓禫祭。以哀兄主咳嗽。退以
中下丁春生後。然近稍減分數。榮川眼痛。近亦止痛。不必費
遠念。惟內眷寒苦。可悶。法田哀以光慶疑慮之症。出避旬
餘日。而渠又作痛方數日。或是感氣。而不能無過慮耳。此中。又
以妻母喪事。內行往還。悲撓幸定。然大小家輪感。方一時
靡然。村中輪沴俱行。少無弛戒時日。而飢荒之急。如水
益深。如干措劃。畢竟似歸於虛名。事事撓慮。不知所以爲計。
姪事。只得以拒絶從事。而未見渠眞實悔悟之萌。
豈可恃而爲安耶。遠書不欲索言也。只日夜望君歸來。
凡百據以取重。而今已歲迫。歲裏還山。似不可必。時氣
到處火熾。危聞日至。京中飢事。聞甚於鄕里。以此尤
欲速歸守餓。而一脚出門。
便不得自在。奈何奈何。雖或
順遞欲歸。其於無橋之包。
何哉。事當起送人馬。而非
但無馬。送馬所費。似不下
於自彼貰馬以來。故所以
若不知者而處之。果能諒
及耶。君穆聖觀皆平安
耶。所恃相依。只此兩賢。
亦或有借乘之路耶。入
直時。運食之節。又何以
處之。千里運饋。決非所
堪。未知有甚區處耶。
卽今見帶何職。所進講
何書。自量亦有少分啓
沃之望耶。愚之過慮。
政恐從來閑界學問。到此便無使着處。且念白首
鄕野之態。觸處生受齟齬。麋鹿之性。決是堪不得。
畢竟不期退而自退。從早浩然。豈非想魚得計耶。吾
家心法。自是如此。然恐傍人見誚。以矯情取異。一覽秘之。
想不待言也。曾有心草數句。欲以贐行者。而旣不及於行。
今又如此隕穫中。甚涉豪華。遂棄去不省矣。早晩
必有歸。何忍入里門也。旣覆之水。亦已無奈何。惟有喪葬
及庇孤寡。收拾文字。是後死之責。然此又煞難如意。若
葬前。君不及歸。則奈何。正晦二初。想必經紀耳。
賢甥李從亦免病。而所幹得失亦何居。聞自溪上有去
便。憑付此書。果卽收覽否。養眞令丈。以不送馬誚責備
至。然正是無病。不知疾痛若遞職。則可借乘於聖觀。
或餘人處。行到陽智宗中。出貰運身之外。無可
致力處。未知盛料以爲如何。堂父主一向康健。從
兄主亦不至如前。可於中丁行禫。須勿費慮。如何。自
官人便想種種。何不續續付書也。恐入好官。都忘家
間思慮之苦耶。好笑好笑。聖觀許兪書事。第問之如
何。猝聞溪上便。艱得此紙寄聲。他奇想於
遯寓書詳之耳。只祝
安健速歸。不宣。
壬辰十二月十二日。再從叔服人 鼎文。頓。

檢討從。泮邸。卽傳納。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