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년 8월 13일, 이병운이 수령과의 접촉 결과 및 향후 계획을 알려 주기 위해 보낸 편지
1831년(순조 31) 8월 13일에 俛齋 李秉運(1766~1841)이 수령과의 접촉 결과 및 향후 계획을 알려 주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에 인편으로 받은 답장에 대해 기쁜 마음을 전하고 그 뒤로 찬비가 내린 뒤 객중에 있는 상대의 안부 및 아들 조카 분들의 안부를 물었다. 善山으로 갔던 誠君은, 水路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줄로 생각되는데 이미 돌아왔는지 물었다. 요즘 山事의 상황이 어떠하냐고 묻고, 몇 달 동안이나 지지부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였다. 모든 일은 지극히 고생을 겪은 다음에라야 유쾌할 때가 있게 된다고 하면서, 겪으며 지내 온 것이 어렵다는 것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병운은 자신이 길을 떠난 것은 부족하나마 자신의 구구한 정성을 표하려는 뜻이었고 거의 출발하려는 즈음에 큰비가 종일토록 내려서 강물이 불어나 뚫린 수로도 있었으나, 장마 끝에 길이 험하여 도저히 먼 길을 갈 형편이 못되니 이곳에서 지레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어제와 오늘 수령에게 가서 연달아 대화를 나눴더니 수령이 보살펴주려는 뜻은 있으나 다만 수단이 부족하였다고 하면서, ‘위세를 조금만 빌려 주시면 쉽게 주효할 것이다’고 하였더니 ‘형편을 봐서 하겠다’고 답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병운은 이런 일은 남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스스로의 성의를 쌓아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내일 집에 돌아갔다가 스무날 뒤에 수령이 상경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만나러 가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때 여러모로 방도를 꾀하여 나아가면 수령이 떠날 때에 따로 알선할 방도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權時簡의 일은 당장에는 착수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신이 만약 나선다면 보답을 받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하고 기밀유지를 당부하였다.
대체로 이 편지는 山訟 등과 관련해서 官의 협조를 얻어 내기 위해 이병운이 주선자 역할을 하고 그 추진 경과를 알려 주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나, 상세한 정황은 이 편지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 편지의 발급인 이병운은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자, 艮巖 李埦의 아들이다. 초명은 永運이다. 그는 全州柳氏 집안과 인연이 깊은데, 그의 누이인 韓山李氏가 柳星休의 아들인 寒坪 柳晦文과 혼인하여 定齋 柳致明을 낳았다. 또한 이완의 사위로 류회문 말고도 柳魯文이 더 있는데, 류노문은 壽靜齋 柳鼎文의 형님이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