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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김양관(金養觀)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25.4773-20130630.0103257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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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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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양관, 류○○
작성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작성시기 1825
형태사항 크기: 34.2 X 29.1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5년 김양관(金養觀) 서간(書簡)
1825년 12월 11일에 김양관이 공부에 정진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김양관 자신은 부모님, 정씨에게 시집간 누이의 병을 걱정하고, 또 이씨에게 시집간 여동생 역시 아들을 잃은 것에 대해 근심하였다. 그래서 여동생에게 갔다가, 경주에서 병을 얻은 상황, 조상의 제사 등의 이유로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경황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상대의 경우 공부를 신실히 하라는 당부를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경우는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근황을 알렸다. 추신에서는, 바래미 김정동이 지은 그 부인에 대한 祭文을 자신도 보고 싶다고 하면서 이번 인편에 잘 부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김효심

상세정보

1825년 12월 11일, 김양관이 공부에 정진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25년(순조 25) 12월 11일에 金養觀이 공부에 정진해 줄 것을 당부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金養觀은 어버이의 병환으로 날마다 근심하고 애를 태우고 있다고 하였으며, 鄭氏에게 시집간 누나의 병이 심해지고 李氏에게 시집간 여동생이 큰아들을 잃었다고 하면서, 한 번 가서 보지 않을 수 없어서 지난달 열흘에 출발하였는데 慶州에서 병을 얻어 5, 6일 동안이나 앓아누워 있다가 선대의 忌祭 때문에 병을 안고 돌아왔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누워서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대가 편지 말미에서 언급한 내용은 상대가 喪難을 겪은 뒤에 스스로 힘쓰는 뜻이니 이는 바로 이른바 蒹葭之霜(사람이 재주를 이룸)이라고 하면서, 매우 감복했다고 하였다. 부디 더욱 전일하고 독실하게 공부하여 先先生이 부탁한 지극한 뜻을 어기지 말고 한 가닥 氣脈을 실추시키지 않도록 하라고 간절히 당부하였다. 자신이 꼭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는 이미 良遂의 摠知 중에 있을 줄로(이미 훤히 알고 있을 줄로) 생각된다고도 하였다. 또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것을 유념하는 이가 없는데 상대에게서 비로소 이런 말을 듣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기뻐서 감히 충고해 봤다고 하였다.
이어, 자신은 재주도 배움도 없고 버릇도 방탕하여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킨 것은 말할 수도 없고 병드신 어버이를 모시면서 志體奉養은 기대하기도 어려운데 단순한 봉양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기본적인 것에 이렇듯 엉성한데 다른 것이야 어찌 감히 바라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학문적 성과를 자신에게도 파급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즉 의문 나는 부분을 자신에게 질의하거나 함께 토론하자는 의미이다. 추신에서는, 바래미 金正錬이 지은 그 부인에 대한 祭文을 자신도 보고 싶다고 하면서 이번 인편에 잘 봉해서 부쳐 달라고 부탁하였다.
발신자 金養觀은 자가 以敎, 본관은 安東이다. 川沙 金宗德이 아들 金慶進이 죽자 후사로 정하였다. 金養觀은 壺谷 柳範休의 막내사위이기도 하다. 피봉의 沙村은 현재의 경북 의성 사촌마을을 가리킨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25년 김양관(金養觀) 서간(書簡)

狀上。
柳生員 服座 執事。謹封。
沙村
省式言。三從兄之行。專未聞。其回獲奉
下惠覆狀。何勝感荷。而旋不禁慨恨之至。謹伏審奄過二十七月之制於
後喪殯殮纔畢之際。又遭意外殀慘於
大喪踰月之前。禍難之荐疊。何此極也。雖行路猶嗟嘆鳴咽。而況如養
觀。自小往來誼情。與他自別者乎。又況
左右纔闋巨創。替事爲命者乎。伏奉所示。尤不任悲溯萬萬。謹惟窮冱
服履無他。令咸從班次第平迪。庸是仰慰。養觀親癠。歲深一歲。日用
憂煎。勢難離側。鄭姉積病加劇。李妹喪其長子。不得不一番往觀
前月旬。猝然治發。得病於。痛臥五六日。拘於先忌。吟病而歸。尙今
伏枕。擁衾呻楚度日。西庭二親。恒事沈淹。而久曠省候。荊布所苦。一向
綿綿不愈。則其加可想。種種煎惱。寧欲無見耳。餘何足煩耶
書末所示。喪難之餘。又此淬勵。正所謂蒹蒑之霜。感服何量。幸望益
加專篤。無負
先先生付托之至意。使此個一脉。不至墜落。如何如何。必
不待獻。想已在良遂摠中。環顧一世。無置念
此者。而於吾左右。始聞此言。故不勝欣聳。敢進
所懷。必爲之駭笑矣。弟。無才無學。又習放浪
猖狂自恣。無一善狀。家聲之墜落。已不容言。病
親之下。志養固無望。體之奉。又不得便適
之道。爲人於世。本原之地。若是空疎
其他何敢望也。然秉彛尙或有
隱現時。幸以餘緖。時時波及。使
免無狀。則是乃大君子成己成物
之一道理。未知爲無敎之地。而遐
棄之耶。方事喘喘。忽聞明將
有便。暫此强病艱草。不備。
伏惟。
乙酉 十二月 十一日。弟 金養觀 狀上。

今日又是先忌。方事供辦。故病荊急。不得致書云耳。
頃見海底金正錬甫。謂其祭其夫人文。左右持去。而近無便可尋。
自此若有便。覓送云云。弟亦欲見其文。幸於今便。堅封付傳。如何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