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12월 17일, 이병원이 赴哭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13년(순조 13) 12월 17일에 所庵 李秉遠(1774~1840)이 赴哭하는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날이 바뀌려고 하는 이때에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니 원통하다고 언급하였다. 이어 바람이 찬 때에 상대의 어버이께서 평안하시며 부모를 모시고 있는 당신은 건승하며 아비를 잃은 아이들도 잘 버티어 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있다. 또한 늙은 자신은 마음을 달래기 더욱 어렵지만 誠伯이 여러 가지로 위로해 주어서 조금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끝으로, 아들은 아직도 赴哭하지 않았기에 내일 나아가 참석하게 했다고 하면서 추운 날씨에 먼 거리를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으니 당신께서는 부디 붙잡아 두지 말고 곧바로 보내달라고 부탁하였다.
李秉遠은 全州柳氏 집안과 인연이 깊은데, 그의 누이인 韓山李氏가 柳星休의 아들인 寒坪 柳晦文과 혼인하여 定齋 柳致明을 낳았다. 또한 다른 누이는 柳魯文가 혼인하였다. 柳魯文은 壽靜齋 柳鼎文의 형님이다. 柳魯文은 1813년 5월 1일 죽었으며 그의 부인인 韓山李氏 또한 이 해 7월 13일 3명의 아들을 남겨두고 죽게 된다. 또한 본문에 등장하는 堂候는 柳範休(1744~1823)를 의미한다. 그의 자는 天瑞, 호는 壺谷으로 柳長源․ 李象靖의 문인으로 安邊 府使를 지냈다.
발급인 李秉遠은 자가 愼可이고, 호는 所庵이다. 본관은 韓山이고 본적은 安東이다. 조부는 大山 李象靖이고, 부친은 弘文館 校理를 지낸 艮巖 李埦이며, 모친은 李範中의 딸이다. 형은 俛齋 李秉運이다. 부인은 默軒 李萬運의 딸이다. 川沙 金宗德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서와 성리학을 익혔다. 1801년 음직으로 穆陵 參奉 ․ 義禁府 都事 ․ 淸河 縣監 ․ 比安 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所庵先生文集』이 있는데, 1904년에 증손 李贊燾가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