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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내숙(內叔)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806.4717-20130630.01032570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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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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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작성시기 1806
형태사항 크기: 25.9 X 44.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6년 내숙(內叔) 서간(書簡)
1806년(순조 6) 1월 그믐날에 집안의 內叔이 장례 예법에 관한 물음에 답해 주기 위해 甥姪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가 당한 연이은 상에 참담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장례에 있어서 몇 가지 잘못 이행한 사실들을 질책하고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상주인 상대가 스스로의 몸을 아껴 어버이께 근심을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본론으로 생질이 질문한 장례 절차에 관해서는, ‘後喪에 成服한 뒤에 上殯에 조석으로 上食할 것’, ‘朔望奠은 삭망일에 다만 上食床에 간략히 행할 것’, ‘무덤을 옮겨 새로 쓴 묘소에 대한 墓祀는 사고로 인하여 寒食에 거행하지 못하였으면 뒤미처 할 것까지는 없다는 것’ 등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사도세자를 신원하기 위한 상소의 疏頭였던 李㙖古今島로 귀양가게 된 일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추신에서는, 그 세 번째 상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는데 韓晩裕趙得永李之珩우의정 金達淳을 논박하고 이에 대해 純祖의 너그러운 비답을 받았다고 하였다.
김동현

상세정보

1806년 1월 그믐날, 內叔이 예법에 관한 물음에 답해 주기 위해 甥姪에게 보낸 편지
1806년(순조 6) 1월 그믐날에 집안의 內叔이 장례 예법에 관한 물음에 답해 주기 위해 甥姪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10일에 무덤을 쓴 흙이 마르기도 전에 賢婦가 따라 죽으니 매우 참담하다고 하였다. 자신은 훌륭한 德性을 가진 생질이 이러한 화를 입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金光國이, 前喪의 장례 날짜를 10일로 한 것이 좋지 않았다고 하고 移葬하여 橫葬한 것도 큰 착오라고 하였으니, 생질 등은 큰일에 있어서 어찌 충분히 살피지 않아서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을 초래하였는지 힐책하였다. 藏風하고 南向하며 安穩한 곳은 버려두고 높고 드러나며 바람 많은 곳을 선택하고,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順局은 쓰지 않고 橫葬한 일은 사리에 닿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이어 初終은 어떻게 마쳤는지 묻고, 이런 상황에서 전염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질의 가족들이 흩어져서 避接하는 데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였다. 형님(수신자의 부친)은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庞叟도 평안한지 안부를 묻고, 생질이 편지에서 병이 많고 매우 피곤하다고 한 언급에 대해서도 우려스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자중자애하여 어버이께 근심을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자신은 初終 뒤에 노비는 없고 일은 많아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지 못하였다고 상황을 설명하였다. 또한 湖上에 갔던 일은 병을 무릅쓰고 소를 타고 가느라 기력이 빠져서 어쩔 수 없이 지레 돌아왔다고 하였다. 이곳의 형제는 항상 아프지만 두 아이의 병은 모두 완치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密陽 조카와 河村 조카도 모두 獨子를 잃었고 高昌에서도 딸을 잃었으니, 자신으로 하여금 기가 빠지게 한다고 하였다. 생질이 질의한 儀節에 대해서는, 後喪에 成服한 뒤에 上殯에 조석으로 上食하는 것은 의례대로 행해야 하고, 朔望奠은 朔望日에 다만 上食床에 간략히 진설하여 행하는 것이 온당할 듯하다고 하였다. 또한 무덤을 옮겨 새로 쓴 묘소에 대한 墓祀는 사고로 인하여 寒食에 거행하지 못하였으면 뒤미처 할 것까지는 없을 듯하다고 하였다. 끝으로, 思悼世子를 伸寃하기 위한 이른바 嶺南萬人疏의 疏頭였던 李㙖全羅道 康津縣 古今島로 島配되게 된 일에 대해서 무력감을 표시하고, 이에 대항하는 세 번째 상소가 이어 올라간 일에 대해서 요즘 세상에도 朝陽鳴鳳(才德이 출중하여 정직하게 敢諫하는 선비)이 있다고 하면서 찬탄하였다.
추신에서는, 그 세 번째 상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는데 韓晩裕趙得永李之珩右相金達淳을 논박하고 이에 대해 純祖의 너그러운 批答을 받았다고 하였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6년 내숙(內叔) 서간(書簡)

校洞 寓所 回傳。
朴谷 內叔等 答書。丙寅正月晦日。
僉哀甥 寓次。
把筆何語。十日
一坏土未乾。賢婦隨之。慘矣慘矣。酷哉
酷哉。豈意吾賢甥忠善德性。有此
斘施禍患如此。邪思無所不至。金光國
以爲前喪葬日。十日爲不好山地。移穴
橫奉。爲大誤錯。君輩於大事。何不十分
審愼。致有人言。舍藏風向陽安穩之
處。而就騰露多風之地。不用天成順局。
而用橫葬碍安之事。殊欠事理。豈可求地
理於天理外耶。雖然到今悔之何及。
初終其何以卒事。又以係憂疑。不免分
散矯寓光景。尤不忍想得
兄主調體果無損害。庞叟亦不添否。君之
多病憊悴之示。不勝憂慮。所遭如許。安
得不爾。幸自愛自護。無貽惟憂。至可至可。
初終後無奴多事。未得送人。一問湖上
之行。扶病騎牛。氣力無迤進之勢。不
免徑還。方作心病。以爲君應絶我。今討
便寄書。滿紙情懇。如此甚哉。君之
忠厚。愛母家也。益服君之義。愧我之薄也。此中兄弟恒病。
兩兒所苦。則皆就平。而大坪西疾極惡。密陽河村
俱失獨子。高昌亦失女。令人氣短。疑節吾何敢質言。
旣有所問。第貢憂見。後喪成服後。上殯朝夕上食。固
當如儀行之。至於朔望奠。則後喪葬前。恐
不可備品殷奠。當朔望日。只於上食床。略加數器
而行之。似穩當耳。新山墓祀。雖無故三秊內。
元無設行之禮。而特世俗徑情而行之。今家有
宗婦之喪。先壟亦皆廢祭。則況新山乎。此
則廢之無疑。而家禮旣用寒食上墓。則
寒食旣有故不擧。恐未必追行於後耳。如何。
島行。全嶺得罪。而此老獨作。生行死歸。行裝
令人仰屋。然纔聞三疏繼出。今世亦有朝陽
鳴鳳。大强人意。屛息潛俟耳。忙撓拭昏
不究。
丙寅 正月 晦日。內叔 等。

三疏。韓萬裕趙得榮李之衍。駁逐右相。而奉優批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