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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798.1100-20130630.01032570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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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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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영운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98
형태사항 크기: 25.3 X 46.3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8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1798(정조 22) 5월 7일에 이영운이 관료로 있는 안동 지역 출신 인사의 동향을 전해 주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뜻밖에 상대 아들의 편지를 받고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상대 및 그 가족들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관직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벼슬하려던 생각이 필경 자신의 인생을 잘못되게 하였으므로 때때로 크게 탄식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이어, 교리 류상조가 지난 27일 입시 때 특별히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가 지금 막 呈辭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반촌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없고 叔明(故寔軒 金熙洛) · 公穆(葛川 金煕周) · 君澤 등 여러 사람들도 모두 말미를 받고 내려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객지에서의 시름이 더욱 심해졌다고 하였다. 한편 류심춘청양현감으로 바뀌어 임명되어 며칠 안으로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상세정보

1798년 5월 7일, 이영운이 관료로 있는 안동 지역 출신 인사의 동향을 전해 주기 위해 보낸 편지
1798년(정조 22) 5월 7일에 俛齋 李永運(1766~1841)이 관료로 있는 안동 지역 출신 인사의 동향을 전해 주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서울로 온 한 달 동안 안부 소식을 받지 못하였기에 그리운 마음이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상대 아들의 편지를 받고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상대 및 그 가족들이 평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천만다행이라고 하였다. 다만 상대가 仲氏, 季氏와 차례로 헤어졌던 때에는 상대의 회포가 괴로웠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영운은 부모님 곁을 떠난 지 한 달을 꽉 채웠는데 소식이 끊겨서 들을 길이 없으니 조석으로 초조하여 잠을 편히 이룰 수 없다고 하였다. 이어 관직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벼슬하려던 생각이 필경 자신의 인생을 잘못되게 하였으므로 때때로 크게 탄식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이어, 校理 柳相祚가 지난 27일 입시 때 특별히 同副承旨에 제수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가 지금 막 呈辭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반촌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 없고 叔明(故寔軒 金熙洛) · 公穆(葛川 金煕周) · 君澤 등 여러 사람들도 모두 말미를 받고 내려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 객지에서의 시름이 더욱 심해졌다고 하였다. 柳令이 또 備邊司의 東萊 府使 薦望에 들었는데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다고 하였고, 淸河 丈(海窩 金熙澤) 은 암행어사(당시 慶尙道 暗行御史 呂駿永)가 파직하기를 청한 대상에 올랐으나 상께서 용서하여 앞으로의 治績을 살펴보게 하였으며, 禮安新寧 丈(磻窩 李龜錫)도 新寧邑의 일로 암행어사의 書啓에 거명되어 금명간에 서울로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다. 柳長水(江皐 柳尋春)靑陽 縣監으로 바뀌어 임명되어 서울에 왕래하며 書筵에 출입하도록 하였으니, 며칠 안으로 서울에 온다는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지난 스무날께 邸吏에게 편지 한 통을 주었는데 그가 제대로 전달하였는지 물었다.
발급인 이영운은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자, 艮巖 李埦의 아들이다. 후에 이름을 秉運으로 바꾸었다. 그는 全州柳氏 집안과 인연이 깊은데, 그의 누이인 韓山李氏柳星休의 아들인 寒坪 柳晦文과 혼인하여 定齋 柳致明을 낳았다. 또한 이완의 사위로 류회문 말고도 柳魯文이 더 있는데, 류노문은 壽靜齋 柳鼎文의 형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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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98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西來一月。未承
安問。慕仰之私。與日俱永。意外。獲拜胤兄
書。伏審
視篆體候萬衛。衙內諸節均穩。天涯慮仰
之餘。得此固萬幸矣。惟是
仲季氏丈次第送將解携之際。想作多少
惡懷矣。並切嚮溸之至。侍生。離違膝下。恰滿
一朔。而音信阻斷。無路承聞。日夕焦昻。殆令
人寢驚夢愕。奈何。直次鬧熱之端。尤非
遐遠所堪。隨波逐流。心跡齟齬。區區祿仕
之計。畢竟誤了此一生。有時浩歎而已。柳校
頃以御營郞上來。去卄七入侍時。自
屢屢下敎。特除同副令。
天意恩顧。非但自家一身之榮侈而已。今方呈
辭下鄕。泮中無人留在。叔明公穆君澤
諸人。亦皆由歸未還。旅愁益覺如麻耳。
柳令又入於備局。東萊薦。姑未有發落
耳。淸河丈繡衣請罷中。自
上宥之。使觀來頭治績。禮安新寧丈。又以
寧邑事。入繡啓中。◘木之行。今明當
入城耳。柳長水換來靑陽。使之往來
京城。出入書筵。數日內似有行聲。此公擔負至重。
未知能副得吉耶。餘。此价立促。不備。伏惟
下察。謹再拜上候狀。
戊午五月 初七日。侍生 李永運 再拜。

去念間。修付一書於邸吏處。或免洪喬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