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11월 19일, 김희천이 사돈인 류범휴에게 보낸 편지
1797년(정조 21) 11월 19일에 金熙天(1760~1799)이 사돈인 壺谷 柳範休(1744~1823)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김희천이 전에 보냈던 편지를 류범휴가 이미 보았는지 묻고, 요사이 추위가 매우 심해진 때에 조섭하고 있는 류범휴의 건강이 어떠한지 안부를 물었다. 仲氏(瓢巷 柳洛休)가 이미 돌아갔으며 아드님도 무탈한지도 물었다. 김희천 자신은 딸을 맞이하기 위해 宣城에 왔는데 이곳에서 인사할 일이 쌓여 장차 며칠 안으로 인사를 끝내려고 하기 때문에 곧장 류범휴에게 가지 못했다고 하면서, 사정이 그러했던 것이라며 이해를 구하였다.
이어, 가마를 타는 대신 걸어 지나야 하는 곳이 있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內行을 동반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아드님(곧 자신의 사위)이 오는 것에 대해 잘못될 염려가 없겠느냐고 하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표하였다. 반보기는 21일에 陶村으로 와서 하기로 하고, 바람이 차더라도 날짜를 어기지 말기를 부탁하였다.
추신에서는, 류범휴가 陶山書院에 와서 머물렀다가 어제 이미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서로 어긋나 만나지 못한 한탄이 매우 간절했다고 하고, 돌아가신 뒤에 여독은 없는지도 물었다.
이 편지의 발급인 김희천은 자가 士健으로 奉化 바래미(海底, 곧 피봉의 海村)의 義城金氏 문중 인물이다. 八吾軒 金聲久의 후손이며, 蟄窩 金井東의 아들이다. 생부는 金泰東이다. 그의 딸인 義城金氏가 壽靜齋 柳鼎文과 혼인하였으므로, 그와 류범휴와 사돈지간이다.
한편, 수취인 류범휴는 자는 天瑞이고, 호는 壺谷이다. 아버지는 道源이며, 본관은 全州이다. 柳長源 · 李象靖의 문인이다. 1780년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85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泰陵參奉 ‧ 司饔院奉事 ‧ 平市署直長 ‧ 禁府都事 ‧ 松禾縣監 ‧ 司僕寺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797년 恭陵令을 거쳐 安邊府使에 부임하였다. 저서로는 『壺谷集』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