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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797.1100-20130630.0103257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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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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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영운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797
형태사항 크기: 27.9 X 39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7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1797(정조 21) 8월 20일에 이영운서울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근황과 活字 제작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偏親만 계시는 상황에서 보통사람처럼 관리로서 관대를 띠고 숙직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전하였다. 또한 언행과 여러 생활 자세를 검속하여 자신의 삶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도리로 삼아야 하지만, 자신의 천성이 본래 절제함이 없고 七陵의 陵官들과 함께 관직 생활을 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상황과 난감함에 대해 언급하였다. 활자는 아직 試役하지 않았고 그 가격도 당초 생각과 달라졌다고 하였다. 貞石과 의견을 주고받아서 조만간 결론을 짓게 하였으나 자신이 독단하는 상황을 면치 못하였으니 도리가 아니라서 스스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하였다. 요컨대 유문을 정리하는 것이 지금의 급선무인데 이 일은 마무리 짓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선주

상세정보

1797 8월 20일, 이영운서울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근황과 活字 제작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797(정조 21) 8월 20일에 俛齋 李永運(1766~1841)이 서울에서 벼슬살이하고 있는 근황과 活字 제작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이영운은 어버이를 모두 여읜 신세로 가을을 맞아 객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처량한 감회 및 상대에 대한 그리움을 언급하였다. 이어 상대 및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특히 仲氏와 아드님은 정해진 형률이 매우 엄격한 상황에서 아무 탈 없이 출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누이 韓山李氏는 과연 전에 정해졌던 날짜에 覲親하러 왔는지, 또한 병세는 어떠한지 물었다.
이영운은 偏親만 계시는 상황에서 보통사람처럼 관리로서 관대를 띠고 숙직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을 전하였다. 또한 언행과 여러 생활 자세를 검속하여 자신의 삶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도리로 삼아야 하지만, 자신의 천성이 본래 절제함이 없고 七陵의 陵官들과 함께 관직 생활을 하느라 그러지 못하는 상황과 난감함에 대해 언급하였다.
끝으로, 活字는 아직 試役하지 않았고 그 가격도 당초 생각과 달라졌다고 하였다. 貞石과 의견을 주고받아서 조만간 결론을 짓게 하였으나 자신이 독단하는 상황을 면치 못하였으니 도리가 아니라서 스스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하였다. 요컨대 遺文을 정리하는 것이 지금의 급선무인데 이 일은 마무리 짓기가 쉽지 않다고 하였다.
발급인 이영운은 본관이 韓山으로, 大山 李象靖의 손자이자, 艮巖 李埦의 아들이다. 후에 이름을 秉運으로 바꾸었다. 그는 全州柳氏 집안과 인연이 깊은데, 그의 누이인 韓山李氏柳星休의 아들인 寒坪 柳晦文과 혼인하여 定齋 柳致明을 낳았다. 또한 이완의 사위로 류회문 말고도 柳魯文이 더 있는데, 류노문은 壽靜齋 柳鼎文의 형님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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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97년 이영운(李永運) 서간(書簡)

滿山松桂。秋聲淅瀝。尋常羈旅之士。尙可懷事
凄黯。況此孤露殘骸。遽於此地。忍見此光景。不如死
之久矣。所以馳慕於
下執事者當如何。伏未審辰下。
靜養體候以時加衛。眷下諸致均吉否。
仲氏丈曁令胤兄。想在遠圍。科律甚嚴。不知能無
事出入否。益切溸慕之至。阿妹。果以前定日來覲否。
病勢或無添損否。來侍病親。私計甚幸。而離違
庇下。調護易失。爲渠戀戀不置耳。侍生。木石耳。猶
束帶持被。自同平人。此懷。惟下執事知之耳。
況復此身之所以依賴者。惟在偏親。偏親之所以慰譬
者。亦在諸孤。而離違膝下。期以歲年。早晩祿養之
計。亦恐是第二義。塊坐窮山。萬事儘悠悠。然去就
之間。煞有不得自由者。不知何處是中間溫坦暖耳。
惟有早晩尋繹澆灌胸中。言語不敢不謹。動止不
敢不審。興寢不敢不早。冠衣不敢不整頓。以無忝我所生。
爲合下道理。而氣稟本自流放。平日未嘗拘檢。重以
七陵隣僚。比屋追隨。自成故例。應接不暇。旣無力
量。可以嶷然自立。又不敢離群以自標致。因循之間。不免同俗。此
又是大悶不聊處。奈何。活字姑未試役。價本又與初料不
同。方往復貞石。以爲從近究結之也。而事機難於回旋。不免
自我專輒。殊非道理。私切不安耳。
要之。遺文整頓。爲目下急務。而此
事。未易收刷。不知日來。或已約日期
會否耳。餘。擬歲
內萬謀由覲。如無甚
急。當歷候。姑不備。伏

下察。謹再拜上候狀。
丁巳 八月 二十日。侍生 李永運 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