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9월 18일, 柳範休가 집안 연소배들의 교육 방침 등과 관련하여 막내숙부에게 보낸 편지
1795년(정조 19) 9월 18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집안 연소배들의 교육 방침 등과 관련하여 막내숙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참고로 이 당시 柳範休는 高城郡守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동생인 瓢巷 柳洛休가 온 뒤로부터 집안 소식이 다시 막히게 되었다고 하였고 떠나간 종들이 오늘쯤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어 숙부 및 각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柳範休는 자신의 형제들이 수십 일 동안 단란하게 모여 있다가 지금 멀리 이별하게 되니 넋이 나갈 만큼 심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奉廟(祭祀를 주관하는 사람이 벼슬에 나가게 되어 사당에 고하고 位版을 싣고 부임지로 가서 임시로 사당을 세워 祭祀지내는 것)를 정지하였다는 것을 앞에서 올린 편지에서 말씀드렸다고 하면서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고 하였고, 高城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있을 형편도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집안사람들이 科擧에서 떨어져서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온 일에 대하여 크게 탄식했다고 하였다. 더구나 허약한 자들이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병에 들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하면서, 차후로는 어린 것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을 완전히 금지함으로써 聖賢의 經傳을 공부하고 몸과 행실을 닦아서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게 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아울러 집안의 年少輩가 儒家의 본색을 완전히 잃은 데다 父兄의 명을 듣지도 않고 늘 자신의 뜻만을 행한다고 하면서, 이는 사소한 일이 아니므로 교육에 유념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毛帽를 만들게 해서 올리도록 하겠다는 내용과, 이곳에는 染母(옷감에 물을 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가 없어서 모든 염색물을 반드시 멀리 서울에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번 이불감도 청색과 자색으로 염색하지 못하고 다만 白紬로 올리게 되었다고 해명하였다. 高城의 폐단이 끝이 없는 실상에 대해서 동생 柳洛休이 직접 말씀 올렸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하루 온종일 고을 정사를 살피느라 먹거나 쉴 여가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家鄕의 긴급한 일에 대해 열에 여덟, 아홉은 잊어버리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三峴의 일에 대해 과연 허락을 받았는지 물었는데 아마도 婚事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추신에서는, 젓갈과 金剛杖을 올린다고 하였고 특히 "生金剛 老風霜 獻東岡 壽無疆"이라고 金剛杖의 杖銘을 짓고서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