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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795.4282-20130630.01032570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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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범휴
작성지역 강원도 고성군
작성시기 1795
형태사항 크기: 31.5 X 38.8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95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1795년 9월 18일에 류범휴가 집안 연소배들의 교육 방침 등과 관련하여 막내숙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동생 류낙휴가 온 후 소식이 막혔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의 형제들은 단란히 모여 있다가 멀리 이별하게 되었으며, 부임지에서 임시로 사당을 세워 제사지내는 것[奉廟]을 정지한데다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고성의 재정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어서 집안의 사람들이 과거에 낙방한 것을 탄식하면서, 연소배들이 과거를 보는 것을 금지하고 경전공부와 행실을 닦게 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였다. 털모자는 만들어 올리겠으며, 옷감에 물들이는 사람이 없어서 이불감을 흰 명주로 올렸다고 하였다. 자신은 정사를 살피느라 여가가 없어서 고향의 일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하고, 삼현에 관한 일은 허락을 받았는지 물었다. 추신으로 젓갈과 지팡이를 올린다고 하고, 지팡이에 새겨 경계하는 글[杖銘]을 지어 가르침을 청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795년 9월 18일, 柳範休가 집안 연소배들의 교육 방침 등과 관련하여 막내숙부에게 보낸 편지
1795년(정조 19) 9월 18일에 壺谷 柳範休(1744~1823)가 집안 연소배들의 교육 방침 등과 관련하여 막내숙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참고로 이 당시 柳範休高城郡守로 재직하고 있었다. 먼저, 동생인 瓢巷 柳洛休가 온 뒤로부터 집안 소식이 다시 막히게 되었다고 하였고 떠나간 종들이 오늘쯤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이어 숙부 및 각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柳範休는 자신의 형제들이 수십 일 동안 단란하게 모여 있다가 지금 멀리 이별하게 되니 넋이 나갈 만큼 심히 근심스럽다고 하였다. 奉廟(祭祀를 주관하는 사람이 벼슬에 나가게 되어 사당에 고하고 位版을 싣고 부임지로 가서 임시로 사당을 세워 祭祀지내는 것)를 정지하였다는 것을 앞에서 올린 편지에서 말씀드렸다고 하면서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고 하였고, 高城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있을 형편도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집안사람들이 科擧에서 떨어져서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온 일에 대하여 크게 탄식했다고 하였다. 더구나 허약한 자들이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병에 들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겠냐고 하면서, 차후로는 어린 것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을 완전히 금지함으로써 聖賢의 經傳을 공부하고 몸과 행실을 닦아서 집안의 명성을 실추시키지 않게 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였다. 아울러 집안의 年少輩가 儒家의 본색을 완전히 잃은 데다 父兄의 명을 듣지도 않고 늘 자신의 뜻만을 행한다고 하면서, 이는 사소한 일이 아니므로 교육에 유념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毛帽를 만들게 해서 올리도록 하겠다는 내용과, 이곳에는 染母(옷감에 물을 들이는 일을 하는 사람)가 없어서 모든 염색물을 반드시 멀리 서울에서 구해야 하기 때문에 지난번 이불감도 청색과 자색으로 염색하지 못하고 다만 白紬로 올리게 되었다고 해명하였다. 高城의 폐단이 끝이 없는 실상에 대해서 동생 柳洛休이 직접 말씀 올렸을 줄로 생각된다고 하면서, 하루 온종일 고을 정사를 살피느라 먹거나 쉴 여가가 없다고 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家鄕의 긴급한 일에 대해 열에 여덟, 아홉은 잊어버리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三峴의 일에 대해 과연 허락을 받았는지 물었는데 아마도 婚事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추신에서는, 젓갈과 金剛杖을 올린다고 하였고 특히 "生金剛 老風霜 獻東岡 壽無疆"이라고 金剛杖의 杖銘을 짓고서 가르침을 부탁하였다.
김장경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5년 류범휴(柳範休) 서간(書簡)

季父主前上白是。
乙卯九月十八日。侄子謹封。
弟來後。家信仍阻。政是涯角消息。去奴輩
想於今日間得抵矣。伏不審
亭居體力更何如。各家大小俱穩否。侄兄弟團聚
數十日。只從巡到。澒洞中過了。今當遠別。令人
黯然消魂。奉
廟停止前白書已盡達。而情理虧缺又自別。殆欲
感淚沾襟。旣不得奉
廟。又邑力殘疲。萬無絜累之勢。而爲弟所拘持。
夫馬行資。抖擻携去云。而逖矣海路。其何以得
抵。家裡科行之狼狽。徒步而歸。不勝浩歎。且
弱質輩。幾何不生病。此後則絶禁少輩。徒
步不緊之行。使之忍飢著膝。往侍
几杖。受聖賢經傳。修身飭行。俾不失家聲。如
何。家中年少輩。其氣貌樣轍。全沒儒家味。
又不聽父兄之命。每每自行己志。此非小事。幸
留意敎飭伏望。毛帽送人中。見謂甘吐。絶
猶不得而來。自此廣求一件持去。渠當造帽
進之矣。大抵此處。百事窘乏。一境無網巾匠。造
此等物不得。又無染母。凡百染物。必遠求於。故前
日衾次。亦不得染靑染紫。只以白紬送上。不勝窘
歎。聞弟言。則排開室處。有紫草云。想以此
染造矣。郡弊無紀
極。弟想口達。自晨
至暮。無食息之暇。傍
無知事强輔。則簿
牒外。家鄕邊。凡事
之緊急者。必十忘八
九。虧道理而碍耳目。
奈何奈何。三峴事。果仍
受快許否。旣受諾之
後。則自是弱齡。或來或往無妨。不必强其志。而
長置家也前下土。以此爲慮。故謾達之耳。餘萬。都
在弟口。不備。伏惟
下鑑。上白是。
乙卯九月十八日。侄子 範休。上白是。

杖銘
生金剛。老風霜。獻東岡。壽無疆。
兩色醢伏呈
金剛杖一枚伏呈。而銘語不成。點敎伏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