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년 9월 12일, 柳道源이 아들에게 『주역』을 가르쳐 달라는 상대의 요청에 관련하여 보낸 편지
1786년(정조 10) 9월 12일에 蘆厓 柳道源(1721~1791)이 아들에게 『주역』을 가르쳐 달라는 상대의 요청에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柳道源은 마침 부득이한 일로 安東府에 들어갔다가 어제 豐山에 도착하였는데, 오늘 저물기 전에는 손녀 내외가 별 탈 없이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들을 맞이했을 때의 기뻤던 마음과 보낼 때의 섭섭한 마음이 교차하였다고 하였다. 대개 여자의 歸寧은 이와 같이 속히 돌아가서는 안 되지만, 손녀의 뜻은 반드시 祭祀 전에 돌아가려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상대 아들이 과연 『周易』의 수십 여 卦를 공부하였으나, 柳道源 자신이 象數에 어두워서 조금도 그의 공부에 도움을 주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설혹 한 가지 알고 반쯤 터득한 것이 있더라도 상대 아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으니, 마치 봉사와 귀머거리에게 시각과 청각을 빌려줄 수 없는 것과 가까운 격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상대가 편지에서 이른 말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또한 다시 자신에게 아들을 보내겠다는 말은 실효가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심히 부끄럽다고 하였다.
피봉의 保家里는 문경에 있는 마을의 지명인데, 安東金氏인 負暄堂 金楷의 후손들이 세거한 곳이다. 편지의 내용으로 볼 때, 수신자의 아들이 곧 柳道源의 孫壻인 것으로 보이므로, 지명과 관련하여 보건대 수신자는 柳道源의 첫째 손서인 金顯奎의 부친 金佑良으로 보인다.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