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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7년 류통원(柳通源)외 1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F.1777.4717-20130630.01032570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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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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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통원, 류도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777
형태사항 크기: 27.2 X 39.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박실 전주류씨 수정재고택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77년 류통원(柳通源)외 1인 서간(書簡)
1777년 8월 1일, 류통원 형제가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병환은 어떤지 묻고 자신은 식욕이 부진하며 류동원은 치통이 심하고, 류장원청송으로 들어가서 寓所의 짐을 수습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어서 과부가 된 며느리가 쇠약해졌으며 혼사가 얼마 남지 않았던 외손녀가 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집안의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가문의 재산이 거덜 났으며 자신은 바깥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기 손자의 병이 나으면 그 내외를 보내 문안드리겠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이광정別檢 형에게 따로 편지를 보내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인호

상세정보

1777년 8월 1일, 류통원 형제가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777년(정조 1) 8월 1일에 范溪 柳通源(1715~1787)과 柳道源(1721~1791)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1777년(정조 1) 8월 1일에 范溪 柳通源(1715~1787)이 여러 근황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병중에 그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하던 차에 심부름꾼이 전해 준 상대의 편지를 읽게 되니 매우 감사하고 다행하였다고 했다. 다만 상대의 눈병이 가볍지 않다는 것과 집안의 우환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柳通源 자신은 원래의 병증이 조금 덜해졌으나 식욕 부진은 예전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아울러 柳道源은 치통으로 인해 열흘 동안 자리에 누워 있고, 柳長源청송으로 들어가서 寓所의 짐을 수습하고 있다는 등의 근황을 전하였다. 葬禮는 추수철을 기다려야 할 형편이라고 하고 묏자리에 후환거리가 많아서 집안의 논의가 일치되지 않고 있다고 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각 집안의 病憂가 없어질 날이 없고 청상이 된 며느리가 너무나 쇠약하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여기에 어제는 또 東城의 외손녀가 병을 얻어 갑자기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혼사 날이 가까워져 모든 물품을 이미 마련한 상황이고 보면 그 광경이 매우 참혹하다고 하였다. 조물주는 어이하여 훌륭한 재주와 자질을 갖춘 외손녀를 태어나게 해놓고 단명에 그치게 하였느냐고 하면서, 애통한 심정을 표출하였다.
府의 일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는데 수령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더구나 몇 달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고 집안의 재력이 거덜 난 상황에 있음을 언급하면서 난감함을 표하기도 하였다. 柳通源은 근래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며 지낸다고 하면서, 바깥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도 그만두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상대에게만은 때때로 편지를 보내고 하는데 근심 걱정만 늘어놓을 뿐이라고 하면서, 매우 죄송스럽다고 하였다. 끝으로, 손자며느리가 매우 수척하여 걱정이라고 하고, 그 남편인 손자도 건강하지 못한 데다 학질을 앓아서 딴사람이 되었다고 하면서 매우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병이 치유되면 문안드리러 보내겠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小山 李光靖 노형과 別檢 형에게도 늘 따로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인편이 번번이 재촉하여 後便에 편지하겠다고 핑계를 대다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진심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다고 하였다.
발급인 柳通源은 자는 叔亨, 호는 笵溪이고 본관은 全州, 본적은 安東이다. 증손인 柳致明의 현달로 인해 나중에 司僕寺正에 추증된다. 柳道源은 자는 叔文, 호는 蘆厓이고 본관은 全州, 본적은 安東이다. 1711년 式年試 2등으로 진사에 합격하고 1728李麟佐의 난에 창의한 친부 柳升鉉에게 증직을 내리면서 明陵參奉을 제수 받았고 이어 繕工監役을 제수 받았다. 저서로는 『退溪集攷證』․ 『四禮便考』․ 『日省錄』․ 『東獻輯錄』․ 『蘆厓集』 등이 있다. 편지 중에 기체후 용어 가운데 ‘道體’라는 말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수신자는 大山 李象靖인 것으로 추측되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이 편지는 조선시대 영남지역 사족의 삶을 일부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결혼이 며칠 안 남았는데 병으로 죽은 외손녀의 처참한 상황, 일족 중 한 사람이 감옥에 갇혀 집안의 재산이 줄어드는 상황이 편지에 적혀있다. 즉 이 편지는 조선시대 사족의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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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777년 류통원(柳通源)외 1인 서간(書簡)

病裏慕用尤切。忽此伻至。伏讀
俯賜書。感幸叵量。第以
眼患非細。頻損
道體。且宅中憂虞。尙未全安。仰爲
之種種慮憫。通源。元證乍減。厭食仍舊。
道源齒痛。浹旬委臥。長源頃入靑鳧。收
拾寓擔。或咫尺阻濶。或分飛憂念。近日情
地。尤無聊賴。埋寃勢當待秋成。而所謂
占穴。實多後慮。一室之中。論議不一。畢
竟持重者。得無病敗耳。但各家病憂。
開霽無日。孀婦縷息。朝夕欲絶。觸事狼
狽。無計得完。昨又聞東城外孫女。得病旬
日。遽至不救。昏日方近。凡具已成。其景色
之絶慘。世所罕比。造物者何故。生出秀奇之
材。淑哲之姿。而必夭閼其命也。痛矣痛矣。府中
事。尙無出場。未知官意何居。而原隰之情。不以其負
犯而可弛。且累月滯囚。家力蕩盡。迫隘境界。爲之
奈何。近日杜門訟愆。外間書疏。亦幾廢置。惟時時
修力於執事。而所陳無非愁歎憂慽之說。絶
無片隻之辭。可以仰關於
函席拂牌之下者。愧
罪愧罪。孫婦瘦瘠似
例也。而極爲戀念。其
夫病殘不健。又患痁
疾。頓爾換奪。可憫可憫。
病若得祛。則當起送
候謁耳。不備。伏惟
下察。謹拜。上謝狀。
丁酉八月一日。下生柳通源道源 拜手。

小山老兄前。每欲別
幅致意。而逢便便輒
忙。卒諉俟後便。輾轉
至今。良用愧恨。
別檢兄前。亦然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