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2년 12월 17일에 김하구가 모종의 사안에 대해 청탁하기 위해 류승현에게 보낸 편지
1742년(영조 18) 12월 17일에 楸菴 金夏九(1676~1762)가 모종의 사안에 대해 청탁하기 위해 慵窩 柳升鉉(1680~1746)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에 여관에서 류승현의 방문을 받았지만 바빠서 회포를 충분히 풀지 못하였으니 지금까지 개운치가 못하다고 하였다. 이어 혹독한 추위에 수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류승현이 만복한지 안부를 물었다. 김하구 자신은 한 번 죽는 것 밖에는 다른 소원이 없는데도 평소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서, 근래 자신의 심정을 전하였다. 새로 부임한 읍에는 반드시 골칫거리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정리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김하구가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평소 친분도 깔려 있겠지만 그가 영덕 출신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마침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감히 갓 부임한 수령인 류승현에게 부탁한다고 하면서, 봐줄 수 있으면 봐달라고 부탁하였다.
피봉의 "金海南"이란 海南 수령을 지낸 김하구 자신을 지칭한 말이다. "寧海 記室"이란 말에서 수신자가 영해 수령임을 알 수 있는데, 바로 당시 영해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용와 류승현이다.
발급인 김하구는 자는 鼎甫, 호는 楸庵이다. 본관은 遂安이고, 아버지는 世熙이다. 1702년 式年試 3등으로 진사에 합격하여 이듬해 성균관에서 유학하였다. 1719년 增廣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典籍 ․ 殿中御史 ․ 海南縣令 등을 역임하였다. 隸書에 뛰어나며 서법의 책이 남아 있다. 문집 4책이 전한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