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4월 15일, 류정수가 족보를 간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류연린에게 보낸 편지
윤4월 15일에 雷圓 柳正秀(1856~?)가 족보를 간행하는 일과 관련하여 奮山 柳淵鱗(1868~1939)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작년 겨울에 족보에 관한 일로 여러 차례 柳淵鱗을 만났던 일을 상기하면서 근래 녹음이 짙어지는 가운데 그리운 마음이 더욱 깊어진다고 하였다. 이어, 柳淵鱗 및 그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柳正秀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나 가족들에게 생긴 우환거리로 인하여 평안하게 지낼 여가가 없다고 하면서 고충을 토로하였다.
본론에서는, 작년 宗會 때에 금년 9월 안으로 명단을 보내라는 뜻으로 협의하여 통문을 낸 바가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한 차례 더 환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몇몇의 宗人들과 더불어 상의하여 통문의 초안을 잡았다고 하면서, 살펴봐 달라고 부탁하였다. 柳永熙가 족보를 쓰는데‘派系에 착오가 있어서 완전히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근래 간행 비용이 부족하여 폐기하고 정지시킨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데도 간행한다면 어찌 큰 수치가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이러한 뜻을 여러 宗人들에게 알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발급인 柳正秀은 조선 말기의 인물이다. 1883년에 典圜局 司事가 되었고, 1884년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1894년에는 度支衙門 參議와 한성 판윤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탁지부 참서관과 회계국장 그리고 司計局長을 지냈다. 1897년 中樞院 議官, 1901년 量地衙門 記事員, 1903년 중앙은행창설위원, 1904년 탁지부협판을 거쳐 종2품에 올랐다. 그 뒤 1905년 文官銓考委員長과 金庫管理長을 거쳐 1906년에는 檢査局長과 건축소장을 겸임하였고, 지방관전고위원과 지방세조사위원을 지냈으며, 敍勳三等과 八卦章을 받았다. 1907년 탁지부차관과 각부관제개정위원, 1908년 회계검사국차장 등을 역임하였다. 수취인 柳淵鱗은 자가 見卿, 호가 奮山이고 西山 金興洛 문인으로 響山 李晩燾의 사위이다. 일제강점기 때 군자금 모금을 주동하였으며 유고 2권이 전해진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김장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