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안동군 길안면(吉安面) 묵계동(黙溪洞)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묵계동(默溪洞)은 조선시대에는 길안현에 속하였고, 1914년 행정개편 당시 길안면 묵계리가 되었다. 마을의 이름은 원래 거묵역(居墨驛)이라고 하다가 1500년(연산군 6)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이 무오사화를 피해 이곳에 머물게 되면서 이듬해 묵촌(黙村)으로 개칭하였다. 김계행은 송암폭포(松岩瀑布) 위에 만휴정(晩休亭)을 지었는데, 그 이후 정자 앞으로 냇물이 잔잔히 흐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묵계(黙溪)로 바꾸었다.
묵계리는 계명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길안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 임수형의 농촌 마을이다. 길안천을 따라 절경이 이어진다. 자연마을로 선항[서낭댕이 · 선항당(仙巷塘) · 선항리(仙巷里)] · 상리[上里, 웃마] · 하리[下里, 안룻마 · 아랫마] · 새마을 · 국만[구마닛골 · 구마이 · 구만(九滿) · 국만리(菊晩里)] · 오락[五樂, 오라기]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묵계서원 및 안동김씨 묵계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9호), 만휴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3호) 등이 있다. 묵계서원은 1706년(숙종 32)에 세워져 김계행과 응계(凝溪) 옥고(玉沽)를 배향하다가 1870년(고종 7)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후 조정의 칙령으로 복설령이 내려졌으나 복원되지 못하다가 1998년 복원이 이루어져 두 분의 위패를 다시 모시게 되었다. 묵계종택은 묵계서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며, 정침, 사랑채인 보백당,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다. 만휴정 아래에는 거대한 송암폭포가 떨어지면서 용추와 호담이라는 두 개의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다. 아래쪽 웅덩이에 벽처럼 둘러싼 바위에는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라고 새겨져 있다.
오락 마을은 조선조 선조(宣朝) 때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안동인(安東人) 김진(金鎭)과 그의 아들 둔수(遯叟) 김인보(金仁輔)가 개척하였으며, 마을 입구에는 김인보의 신도비가 세워져있다. 김인보의 아들 오락당(五樂堂) 김정호(金廷豪)는 이 마을에는 다섯 가지 즐거움인 산 · 물 · 나무 · 물고기 · 복숭아가 있다고 하여 오락(五樂)이라 명명하였다. 마을 앞에는 350여 년 전에 조성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마을 한가운데는 안동김씨 감찰공파 종택인 돈수재와 돈목당(敦睦堂)이, 북쪽 끝자락 봉월산 아래에는 낙빈정(洛濱亭)이 자리 잡고 있다. 낙빈정에서 마을 쪽으로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오락의 당집이 있다.
1913년 묵계동에는 姜氏, 權氏, 金氏, 朴氏, 裵氏, 孫氏, 沈氏, 李氏, 田氏, 鄭氏, 趙氏, 崔氏, 卓氏, 許氏, 玄氏 등 적어도 15개 이상의 성씨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金氏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의 성(朝鮮の姓)에는 안동김씨 52호가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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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