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철종 7) 10월, 국왕이 李源祚를 嘉善大夫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
내용 및 특징
1856년(철종 7) 10월 국왕이 이원조를 가선대부로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敎旨]이다. 발급일자 위에 ‘施命之寶’가 답인되어 있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문관 종2품의 하계 품계이다.
국왕이 교지를 내린 달은 함풍 6년(철종 7) 10월이다. 이때 통정대부에서 종2품 가선대부로 加資되었다.
이원조는 1809년 문과에 급제하고, 이후 승문원 박사에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번의 파직과 서용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고 1853년 9월 좌승지에 임명되었지만 10월 승정원 내 좌차조정에 따라 좌부승지가 되었다. 다음날 좌부승지와 우부승지가 체직되어 다시 좌승지가 되었으나 1854년 10월 20일 경연에 불참하여 파직되었고, 12월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11월 승지로 임명되었지만 체직되고, 12월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1856년 8월 이원조를 대사간에 임명하였다.
이원조(1792~1871)는 자가 周賢이며, 호는 凝窩이다. 초명은 李永祚이고, 1812년에 개명하였다. 생원 李亨鎭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李奎鎭의 양자가 되었다. 18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제주목사, 한성판윤,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여,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다.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鄭宗魯와 柳致明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성리학 사상은 조카 李震相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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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응와 선생 문집』,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