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년 3월, 국왕이 이관희에게 생원 3등 제44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생원시 합격증서
내용 및 특징
1855년(철종 6) 3월에 유학 李觀熙가 生員試에 3등 제44인으로 합격하였음을 증명하는 백패이다. 발급일자 위에 ‘科擧之寶’가 답인되어 있다.
생원시는 진사시와 더불어 조선시대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본래의 목적으로 실시한 과거이다. 소과 또는 사마시라고도 한다. 생원시는 五經義와 四書疑의 제목으로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을, 그리고 진사시는 賦와 詩의 제목으로 문예창작의 재능을 각각 시험하였다. 그리하여 합격자에게 생원 또는 진사라고 하는 일종의 학위를 수여하였다.
문무과[大科]가 33인을 뽑는데 비해 생원 ․ 진사시에서는 100인을 뽑았는데, 1등이 5명, 2등이 25명, 3등이 70명이다. 이관희는 생원시에 3등 제44인으로 합격하였으므로 이는 전체 100인 중 74등으로 합격하였음을 의미한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幼學李觀熙生員三等第四十四人’을 한 줄로 써서 생원시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는데, 생원시 합격 당시 이관희는 幼學의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관희(1824~1895)는 本貫은 星山이다. 字는 羲賓이며 號는 浦叟이다. 父는 李鼎相이다. 거주지는 星州이다. 1855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였다. 1885년 蔭職으로 義禁府都事를 제수 받았다. 사람에게 베풀기를 잘하여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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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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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