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년(헌종 15) 윤4월, 국왕이 이원조의 처 숙부인 조씨를 정부인에 추증하는 고신
내용 및 특징
1849년(헌종 15) 윤4월, 국왕이 李源祚의 처 淑夫人 趙氏를 貞夫人에 추증하는 고신이다.
숙부인은 조선시대 문무 당상관의 처에게 내리는 外命婦 정3품 작호이고, 정부인은 정·종2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작호이다. 또한 연호 왼쪽에 "通政大夫 守 慶州 府尹 李源祚 妻 依法典追贈"한다는 증직 사유가 적혀 있다. 이원조는 1849년 4월 21일 경주 부윤에 임명되었다. 經國大典에서 外命婦의 封爵은 남편의 관직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이원조가 종2품 경주 부윤에 임명됨에 따라 이원조의 처 조씨또한 종2품계인 정부인으로 추증된 것이다
이 고신이 발급된 일자는 도광29년(헌종 15) 윤4월이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윤4월 11일에 행 이조판서 李若愚, 이조참판 金輔根, 우부승지 金益文 등이 참석한 가운데 政事를 열어 李碩文, 李敏謙, 李奎鎭 3代가 추증되었으며 이 때 이원조의 처 또한 추증된 것으로 보인다.
이원조(1792~1871)는 자가 周賢이며, 호는 凝窩이다. 초명은 李永祚이고, 1812년에 개명하였다. 생원 李亨鎭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李奎鎭의 양자가 되었다. 18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제주목사, 한성판윤,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여,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다.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鄭宗魯와 柳致明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성리학 사상은 조카 李震相에게 전해졌다. 처인 조씨는 豊壤趙氏 趙應洙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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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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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國大典』,
『승정원일기』,
『응와 선생 문집』,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