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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5+KSM-XA.1841.1100-20130630.E4784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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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고신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정치/행정-임면-고신
작성주체 헌종, 이원조
작성지역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1841
형태사항 크기: 66 X 9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1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1841년 1월, 헌종이원조통정대부 행 제주 목사에 임명하는 문서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 당상관 품계이며 제주 목사는 정3품 외관직이다. 즉 이원조는 이 해에 여러 벼슬을 거쳐 당상관에 임명된 것이다. 또한 1840년 영국의 배가 제주도 일부 지역을 약탈하여 민심이 혼란해 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비변사의 추천을 통해 이원조제주 목사에 임명하였다.
배재홍, 『退溪學과 韓國文化』39, 경북대 퇴계학 연구소, 2006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승정원일기』,
『응와 선생 문집』,
김인호

상세정보

1841년(헌종7) 1월, 국왕이 이원조통정대부 행 제주 목사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
내용 및 특징
1841년(헌종 7) 1월에 국왕이 李源祚通政大夫 行 濟州 牧使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敎旨]이다. 이원조에게 정3품 통정대부의 품계가 내려졌기 때문에 교지가 발급된 것이다. 연호 아래에는 ‘施命之寶’를 찍는다.
이 고신이 발급된 일자는 도광 21년(헌종 7) 정월이다.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월 1일에 비변사에서 이원조제주 목사로 薦望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임명된 이유는 1840년 12월 30일 표류하던 영국의 배가 대정 가파도에 이르러 둔전에 소를 노략질해간 일로 전 목사 具載龍이 파직되었기 때문이다. 교지에는 연호 옆에 ‘加資事承傳’이라고 작은 글씨를 적어놓았다. 즉 이원조는 당상관에 임명된 것이다.
통정대부는 정3품 上階이며 당상관이며 제주 목사는 정3품 외관직이다. 또한 품계가 관직보다 높기 때문에 行守法에 의거하여 行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목사는 牧에 파견되는 장관으로 관할지역에 대한 농업의 장려, 호구의 확보, 貢賦의 징수, 교육의 진흥, 군정의 수비, 사송의 처결 등을 담당했으며 진관의 책임자인 첨절제사의 군직도 겸하였다. 제주목은 1397년(태조 6) 설치되었으며 제주도 전체를 총괄할 뿐만 아니라 전라도 관찰사의 업무 중 일부를 처리하였다. 이 때문에 다른 지역의 목사보다 비중을 두어 당상관인 통정대부절충장군을 주로 임명하였다.
이원조1809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중앙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40강릉 대도호부사라는 외직을 맡게 된다. 하지만 1841제주도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薦望되어 제주 목사로 轉任하게 되고 품계도 통정대부로 陞階되어 당상관에 오르게 된다.
이원조(1792~1871)는 자가 周賢이며, 호는 凝窩이다. 초명은 李永祚이고, 1812년에 개명하였다. 생원 李亨鎭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李奎鎭의 양자가 되었다. 18세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제주목사, 한성판윤, 공조판서,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여,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다.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鄭宗魯柳致明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성리학 사상은 조카 李震相에게 전해졌다.
배재홍, 『退溪學과 韓國文化』39, 경북대 퇴계학 연구소, 2006
鄭求福, 『古文書硏究』 9·10, 한국고문서학회, 1996
유지영, 『古文書硏究』 30, 한국고문서학회, 2007
『승정원일기』,
『응와 선생 문집』,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1년 이원조(李源祚) 고신(告身)

敎旨
李源祚通政
大夫行濟州牧
使

道光二十一年正月日
加資事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