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9년 9월, 국왕이 이규진에게 문과 갑과에 제1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문과 급제 증서
내용 및 특징
1799년(정조 23) 9월에 국왕이 李奎鎭에게 문과 갑과에 제1인으로 합격한 것을 증명하여 발급한 홍패이다. 발급일자 위에 ‘科擧之寶’가 답인되어 있다.
문과는 조선시대 문관을 등용하기 위해 실시한 과거이다. 문과에서는 각각 甲科에 3인, 乙科에 7인, 丙科에 23인을 배정하여 총 33인을 뽑는다. 따라서 이규진은 갑과 제1인으로 급제하였으므로 전체 1등, 곧 장원으로 합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뒷면 표지에는 황색 종이 위에 ‘生員李奎鎭文科甲科第一人’을 한 줄로 써서 문과 급제자의 당시 신분, 이름 및 성적을 표시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799년(정조 23) 9월 30일에 문묘에서 酌獻禮를 거행하고 이어 춘당대에 나아가 알성과를 실시하여 문과에서는 이규진 등 6인을 뽑고 무과에서는 鄭慶鎭 등 13인을 뽑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급제 당시 이규진의 나이는 36세였으며 생원의 신분이었는데, 이보다 약 16년 전인 1783년 10월 3일에 생원시 3등 제5인으로 입격했던 이력이 있다. 일화에 따르면 ‘이규진이 1799년(정조 23) 가을에 알성시에 장원급제하자 임금[정조]이 매우 기뻐하면서 "이 사람이 급제했구나." 하였다. 근친을 위해 귀향하는 날에 또 입시하게 하여 "오래지 않아 마땅히 벼슬을 내려 부를 것이다. 그 동안에 반드시 『朱書』를 읽어야 한다." 하면서 손수 편찬한 『朱書百選』 한 질을 주었다. 이규진은 감동하고 돌아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에 임금이 승하하자 눈물을 흘리며 지은 시에, "아직 죽지 않은 외로운 신하는 머리 허옇게 세었으나, 남기신 가르침에 따라 평생 주서를 읽으리라[未死孤臣成白首, 平生遺敎在朱書]"라는 구절이 있다.’고 전한다.
이규진(1763~1822)은 本貫은 星山이다. 字는 而拱이며 號는 農棲이다. 父는 李敏謙이고 祖父는 李碩文이다. 거주지는 星州이며. 鄭宗魯의 문인이다. 1783년 式年試 3등으로 생원에 합격하여 1799년 謁聖試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왕으로부터 朱子書百選을 상으로 받았다. 左贊成에 증직된다. 유고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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