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8월 11일, 이성구가 신행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23년 8월 11일에 李性求가 신행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令彧(상대의 손자)이 돌아간 뒤 답장이 없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서울의 편지에 의하면 日本의 風聞이 매우 위태로운데, 子弟의 去就는 어떤가를 묻고, 어느 집이고 난세에 나서 자손들이 단란하게 지내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朞服人인 자신은 여름에 조카가 객지에서 죽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고향에는 다 무사하나, 후사가 없어 7대의 門戶가 위태롭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그 대책을 세울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안은 의혹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于禮(新婦가 처음으로 시집으로 들어가는 예식)는 형이 먼저하고 아우가 나중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같이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하고, 다만 내년 봄으로 미루려고 한다고 하였다. 1년에 두 번이나 세속에서 꺼리는 바가 있어 처음에는 아이를 시켜 楓井으로 데리고 가게 하려고 하였으나, 상대에 따라 행하려고 하여 新行을 어떻게 할지를 상세히 적어주기를 청했다. 자신의 이번 편지는 결코 새로운 사돈 사이에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닌 만큼 지침을 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