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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이성구(李性求)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4+KSM-XF.1923.4717-20120630.000325700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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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성구
작성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작성시기 1923
형태사항 크기: 20 X 84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소호 한산이씨 대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3년 이성구(李性求) 서간(書簡)
1923년 8월 11일에 이성구가 신행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손자가 돌아간 뒤로 답장이 없어 유감스럽다고 하였다. 서울 편지에 의하면 일본의 소문이 위태롭다고 하면서 상대방 아들의 거취에 대해 물었으며, 자신은 조카가 객지에서 죽어서 안타깝고 후사를 세울 대책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으로 들어가는 예식은 내년 봄으로 미루려한다고 하고, 상대방에 따라 행하려고 하니 신행을 어떻게 할지 지침을 자세히 적어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진영

상세정보

1923년 8월 11일, 이성구가 신행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
내용 및 특징
1923년 8월 11일에 李性求가 신행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사돈에게 보낸 편지이다.
令彧(상대의 손자)이 돌아간 뒤 답장이 없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서울의 편지에 의하면 日本의 風聞이 매우 위태로운데, 子弟의 去就는 어떤가를 묻고, 어느 집이고 난세에 나서 자손들이 단란하게 지내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朞服人인 자신은 여름에 조카가 객지에서 죽어 안타깝다고 하였다. 고향에는 다 무사하나, 후사가 없어 7대의 門戶가 위태롭게 되었으니 죽기 전에 그 대책을 세울 생각만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와 관련된 사안은 의혹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于禮(新婦가 처음으로 시집으로 들어가는 예식)는 형이 먼저하고 아우가 나중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같이 하더라도 무방하다고 하고, 다만 내년 봄으로 미루려고 한다고 하였다. 1년에 두 번이나 세속에서 꺼리는 바가 있어 처음에는 아이를 시켜 楓井으로 데리고 가게 하려고 하였으나, 상대에 따라 행하려고 하여 新行을 어떻게 할지를 상세히 적어주기를 청했다. 자신의 이번 편지는 결코 새로운 사돈 사이에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닌 만큼 지침을 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金孝京,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朴大鉉,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권경열,최연숙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3년 이성구(李性求) 서간(書簡)

令彧歸後 意或趁時奉答 而漠
然無聲息 云遠之歎 到此極矣 謹
伏候秋凉
令棣體事 對時康旺 膝下諸位
面面在福田否 京信當陸續 而日
本風聞 極甚危怖 未知第胤兄
去就經㤼 果何如云也 吾儕生此不
辰 若箇子孫 不能環侍唯諾 而無
端爲東家憂慮 勿論爾我 此豈非
百倍懲念處耶 爲之獻念不已 弟
朞服人 夏間遭侄兒慘景於數百里
客館 人固可哀 而渠父情事 去益
茫然 奈何 惟故里無事 山寓諸眷
亦免大何 而第念七世門戶 危如一
髮 期欲以未死前扶持塡補之策
是滿腔血願 所以向來一書 出於萬
不得已之擧 而倩孫去後 若似耳外
聽過 必是膚受之言 深入穉情 告
于尊堂 萬端疑慮 有問無答耶
所謂于禮 當兄先而弟後 然一時
並擧 亦或無妨 而曾與座下 有
問醫調病之約 故使之退託明春
云 凡事皆如此 尙何多言 然一年
再繞 世俗所忌 初欲使兒子帶去
貴中 則弟之所準擬也 新行
早晩 詳細錄示之如何 弟之此
書 決非新査往復之禮 而若含
糊不言 則今何以知這間委折
而裁節之也 慙愧慙愧 餘 不備 謹
狀上
癸亥八月旬一 査弟 朞服人 李性求